지난 8년간 별다른 정책적 대책을 내놓지 못했던 정부가 의사보조인력 통칭 PA(Physician Assistant)에 대한 불법여부와 직무구분, 업무범위 등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전망이다.
그간 국내에는 상식적으로 의사만이 해야 한다고 규정된 진료나 치료행위를 대신 해왔던 PA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음성적으로 활동해왔다. 이들은 의사 대신 환자의 수술부위 봉합을 담당하거나 각종 진료행위에 관여했다.
문제는 의사 아닌 PA들의 의료행위로 인해 일부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전공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의사가 아닌 이의 지휘를 받으며 갈등관계가 형성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2011년 국회는 PA의 불법여부와 현황을 확인할 필요성을 제기했고, 보건복지부는 대한의학회에 의뢰해 관련 실태조사에 나섰다. 당시 의학회 수련교육이사였던 왕규창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는 ‘의사보조인력(PA) 실태조사 및 외국사례 연구’를 수행했다.
이후 8년이 지난 2019년, 의사보조인력에 대한 문제는 변화가 있었을까? 대한병원협회가 개최한 제10회 KHC(Korea Healthcare congress) 둘째 날인 5일, ‘PA와 전문간호사 제도, 어떻게 해결해야하나’라는 주제로 진행된 논의에서 왕 교수의 답은 “없다”였다.
그에 따르면 8년 전, ‘미국에서 전쟁터 등에서 부족한 의사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훈련시킨 인력들의 흡수를 위해 도입한 PA제도가 국내에는 불필요하지만, 전공의들의 과다업무를 해소하기 위해 저위험 단순 반복 업무를 담당할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결론과 달라진 점은 ‘의사보조인력이 더 만연했고, 대책이 절실해졌다’는 정도다.
24시간 360일 이상을 근무하던 전공의들의 무제한적 노동력이 전공의특별법 등으로 인해 주80시간으로 제한되며 한국의료를 떠받치던 노동력의 상실을 다른 노동력이 메워야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간호사 등 의료인의 PA화가 가속화, 공고화 됐지만 정부는 별다른 정책적 변화나 개선방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왕 교수는 “8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책적 제안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지금이라도 의료인력 특히 PA로 활동하는 대부분의 인력인 간호사들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고, 교육을 받아 역량을 인정받은 간호사 혹은 전문간호사에게 업무를 이관해 환자가 안전하고 의료서비스나 전공의 교육이 제대로 제공되도록 제도권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논의에 함께 참여한 보건복지부 손호준 의료자원정책과장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손 과장은 “문제의식과 해결의 필요성,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일단 ‘의료인 업무범위 개선협의체’를 구성해 의료인 간의 업무범위를 어떤 식으로 짜야할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대한간호사회, 병원간호사회 등 유관단체에 공문을 보내 참석을 요청한 상황”이라며 “문재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 법령에 이를 명기해야할지 등에 대한 연구용역도 발주할 계획”이라면서 환자안전과 진료현장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한편, 복지부의 이 같은 의지표현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서의 불안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한 병원장은 “환자 쏠림도 문제지만 의사나 간호사, 전공의, 전임의 등 의료인력의 수도권 쏠림도 심각하다. 중소지방병원은 의료공백이 발생한다. 이 틈을 PA가 메우고 있지만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대책마련까지의 제도공백을 우려했다.
이에 손 과장은 “지금까지의 정부입장은 국내엔 PA제도가 없으며 의사 아닌 의료인력의 의료행위는 분명한 불법이라는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도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직역간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일단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빨리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시도해보겠다”고 답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