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외곽에 있는 ‘아리랑 요양원’은 한국과 우즈베키스탄 양국의 합의로 고려인 1세대 독거 어르신을 위해 만든 요양원이다. 2006년 양국 정부간 합의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측이 건물을 무상증여하고 재외동포재단이 개보수를 지원했고 2010년 3월에 개원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고려인’은 1920년대 스탈린 치하 소련 연해주 등지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조선인 약 17만 명의 후손을 말합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은 18만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었고 아리랑 요양원이 있는 지역에는 ‘고려말’을 하지 않으면 당근 하나도 살 수 없을 정도의 고려인 집성촌이 있었다고 한다.
나라 잃은 고려인들은 낯설고 거친 땅을 일궜고 그 땅에서 쌀을 키우고 김치를 담가 먹으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 흘러 1세대 대부분은 80대 후반, 90대가 됐고 자식 손자들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 대도시로 공부나 일을 하러 떠나갔다. 이제 이 지역의 1세대 어르신들은 아리랑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고 고려인 이주 초창기의 삶을 기억하는 이들도 몇 남지 않은 상황이다.
아리랑 요양원 방문에는 미르지요예바 여사도 동행했다. 이날 김정숙 여사와 미르지요예바 여사는 오전의 공식환영식부터 369 유치원 방문, 아리랑 요양원 방문까지 하루 종일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두 영부인은 요양원 2층 거실에서 입소중인 1세대 고려인 어르신들을 만났다.
김정숙 여사는 이 자리에서 “오늘 미르지요예바 여사와 함께 다니며 아리랑 요양원에 함께 했다. 고려인들은 나라 없이 와서 노력으로 부자도 되고, 소비에트 시절에는 노력영웅도 23명이나 된 훌륭한 분들이다”면서 고려인 1세대 어르신의 삶에 경의를 표했다.
김 여사는 “(고려인들은) 뿌리는 한국인이지만 우즈벡 국민이기도 하다. 여기올 때 마음이 복잡했다. (당시) 나라잃은 마음으로 왔을 텐데 마음이 아팠다. 고생하셨다고 들었고 한국 국민으로 우즈벡에 감사하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많이 컸고 (이제는 다른 나라에게) 무엇을 도와주고 함께 클 것인가를 많이 이야기한다. 어머니들의 노고가 밑바탕에 있다. 대통령 정상회담하며 우리도 줄 것이 있다 이야기할 수 있어 뿌듯하다.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들의 노고가 있다”며 감사를 전했다.
조 조야(85) 할머니는 “배 곯으면서 여기 와서 젖이 안 나는데 우즈벡 여자들이 애기한테 젖을 먹여 주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았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손님을 귀하게 안다. 한밤 중에 온 손님한테도 차를 대접한다” 라며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인정을 이야기했다. 김정숙 여사도 같은 사례를 이야기를 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조금 울먹였다.
허 이오시프(85) 할아버지는 “3살부터 우즈베키스탄에 살았다. 역사적으로 한국이 고향이지만 실질적으론 우즈벡이 고향이다. 우즈벡 정부가 아니었으면 살 수가 없었다. 빵 한 조각도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우즈벡 정부에 감사하고, 나이 들어 좋은 요양원에 살 수 있는 것도 역사적 고향인 한국 덕분이다. 한국 정부에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던 어르신들은 집단농장 시절에 불렀던 노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두 영부인은 이어 1층 프로그램실에 들러 치료를 받고 휴식하는 고려인 어르신들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김 여사는 “한국인이 23명이나 노력영웅이 되었다는데 다 여러분의 덕이다. 대단히 감사하다. 이주 했을 때 어려움, 배고픔이 얼마나 컸을지. 우리나라가 더 커져서 이제는 함께 커나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우리 동포 덕분에 우즈벡에서도 존경받는 고려인이 되신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국민들이 안 아프게 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며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이번 김 여사의 아리랑 요양원 방문을 계기로 미르지요예프 대통령은 40인승 버스를 요양원에 증정하기로 결정했고 오늘 미르지요예바 여사가 버스 열쇠를 요양원에 전달했다.
아리랑요양원의 김나영 원장은 40인승 버스가 바꿔놓을 요양원의 일상에 기대와 흥분을 나타냈다. 김 원장은 “원래는 차가 없어 동네에서 작은 버스를 빌려 어르신들 치과 진료 갈 때만 사용했다. 차가 너무 작으니 나들이는 힘들고 휠체어 타시는 어르신들은 아예 모시고 갈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거동 어려운 어르신들은 바깥 구경이 절실하다. 이제 버스가 있으니 어르신들을 한 차에 다 모시고 나들이 갈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버스 뿐 아니라 아리랑 요양원에는 최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김정숙 여사의 방문이 결정된 뒤 우즈베키스탄 정부 차원으로 요양원에 대한 대대적인 시설개선이 이뤄졌다. 요양원 앞 진입로가 깔끔하게 정비되고 10년이 넘어 낡았던 가구와 가전제품, 어르신들의 치료를 위한 운동기구가 새롭게 들어왔다. 먼 곳 외출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실내에서 자연을 볼 수 있는 대형 화분이 들어왔고 거친 잔디에 듬성듬성 꽃이 심어져 있던 요양원의 정원에 꽃과 나무가 가득 심어졌다. 잠시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곳에서 생활하실 어르신들을 위한 집기와 시설이 보강된 것이다. 어르신들이 이동하는 1층과 2층 복도, 거실 전체에 도톰한 카페트가 깔린 것은 특히나 반가운 일이다.
“어르신들은 낙상이 치명적이예요. 지팡이를 짚고 걸으시다가 넘어져서 골반 골절이 오면 80대 90대 어르신들은 거의 돌아가십니다. 그런데 전체 시설에 카페트가 깔리게 되어 그런 위험이 확실히 줄어들 것입니다.”
김정숙 여사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미르지요예바 여사의 고려인 사회에 대한 지원에 감사를 전했다.
“여기 영부인 방문은 처음이지요. (영부인께서) 도로도 내주시고, 꽃도 해주시고, 40인승 버스도 해주시면서 사시는 것도 살펴주시겠다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청와대는 아리랑 요양원의 어르신들을 통해 역사속에서 이어지고 고려인을 통해서 이어진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우정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며 두 영부인이 방문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대한민국 독립에 기여한 연해주 한인들의 후손인 고려인 동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