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만 하면 끝? 기준 없는 혈액 사용, 부작용은 환자 몫

수혈만 하면 끝? 기준 없는 혈액 사용, 부작용은 환자 몫

비싼 대체제‧관행적 이유 등으로 의료현장에선 불필요한 수혈 중

기사승인 2019-05-03 03:00:00

“수혈해 보신 분 있나요? 부작용 때문에 찝찝해요”

환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수혈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에는 드라마에서도 ‘수술 중 혈액 부족 상태로 인해 급하게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찾는’ 내용이 단골 소재였을 만큼 수혈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수혈’이 더 이상 안전한 치료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피를 몸 안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면역학적인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혈 부작용에는 세균감염, B형·C형 간염바이러스 등 감염증 외에 발열, 두드러기,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의 면역학적 반응이 포함된다. 드물게, 수혈 후 이식편대숙주병(수혈후 GVHD), 수혈관련 급성허파장애(TRALI) 등의 심각한 부작용도 일어날 수 있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과거에는 부족한 혈액성분을 빠르게 보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혈이 권고됐지만, 이제는 수혈이 더 이상 안전한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되고 있다”며 “혈액은 장기이식과 똑같다. 다른 사람의 혈액이 내 몸으로 들어오는 것은 콩팥이나 간이식과 같아 이에 따른 면역학적 반응이 일어나면서 사망률, 합병증 발생률에 영향을 미친다. 암환자의 경우 모든 암에서 수혈을 하면 생존율이 더 나빠진다는 연구가 보고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수혈을 하고 안 하고도 중요하지만, 수혈량이 많아질수록 합병증 빈도, 사망률 등이 더 크게 증가한다”며 “혈액 1팩을 수혈했을 땐 내 피와 혈액 1팩의 주인의 피가 섞이면서 면역학적 반응이 일어나지만, 2팩을 수혈할 경우 총 3명의 피가 섞여 면역학적 반응이 일어날 위험이 8배 이상 증가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수혈의 위험성을 예방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0년 환자혈액관리(PBM)를 각 정부가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PBM는 ‘환자 치료결과의 최적화’를 목적으로 ▲환자 스스로 혈액 생성을 촉진하도록 해 수혈을 최소화 ▲수술시 환자의 출혈을 최소화 ▲수술이 끝난 이후에 환자의 혈액량이 적어도 생리적 보전능력을 향상시켜 집중관리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전국적으로 PBM 프로그램을 시행한 호주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원내 사망률 28% 감소, 평균 재원일 수 15% 감소, 병원 감염 21% 감소, 허혈성 심질환 또는 뇌혈관 질환 31% 감소 등의 효과를 확인했다.

반면 국내 의료현장에서는 불필요한 수혈이 과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7년 보건당국과 대한수혈학회가 수혈가이드라인을 만든 이후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의사들의 80%가 지침을 따르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대체로 관행적(선배로부터 배운 대로)인 이유 혹은 저렴한 혈액 등으로 인해 과도한 수혈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많은 의사가 과거 전공의 때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수혈을 많이 한다. 부작용 위험이 높은 위암 환자의 국내 평균 수혈률은 20%이지만, 국립암센터나 서울 내 큰 병원들은 5% 미만이다. 피가 더 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의료기관 간에도 차이가 많이 난다”고 지적했다.

혈액 대비 수혈 대체제의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점도 제기됐다.

이정재 순천향대 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수술 전에 환자에게 빈혈이 있으면 빈혈을 교정하고 수술하면 수혈을 줄일 수 있다. 이때 쓰이는 치료제가 현재는 비급여다”라며 “혈액 한 팩에 4만 8000원이다. 보험이 적용되면 본인 부담금은 2만 5000원 정도다. 반면 대부분의 대체제는 비급여고, 고용량 철분제는 500ml에 10~15만원”이라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수혈 받은 환자와 수혈 받지 않은 환자의 결과가 다르다. 수혈을 받지 않은 환자가 입원기간이 짧고 합병증, 감염, 사망률, 재입원율이 낮은 것으로 보고된다”며 “문제는 수혈 부작용은 환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혈액형이 다른 혈액을 투여하는 등의 의사 과실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기관이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영우 교수 또한 “다른 대체제에 비해 혈액 값이 싼 이유도 있지만, 혈액은 많이 처방해도 삭감을 당하지 않는다. 그만큼 중요한 상황에서 사용됐다고 인정받는 것”이라며 “물론 긴급한 상황에서 수혈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굳이 수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지혈제나 수액 등 대체 치료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의사들은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수혈을 할 땐 환자들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료인은 수혈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과 대체치료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며 “그러나 실상은 수혈을 받기 싫어도 환자들이 사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동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수술을 해줄 수 없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다. 이는 의료인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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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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