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31명 사상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솜방망이 처벌 논란

法, 31명 사상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솜방망이 처벌 논란

기사승인 2019-05-07 15:57:09

재판부 “본질적으로 기존 규정‧지침 안 지켜 발생한 사고”
노동계 “원청업체에 책임 면죄부 주는 말도 안 되는 판결”


2017년 5월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크레인 참사와 관련, 1심 선고 결과가 7일 나왔다.

재판부는 직접적으로 사고 책임이 있는 크레인 신호수들에게는 집행유예형과 벌금형을, 간접적 사고 책임이 있는 원청업체나 하청업체 관계자들에게는 벌금형 또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지역노동계는 “작업자들만 처벌하고 사고 책임이 있는 원청업체는 면죄부를 주는 말도 안 되는 판결”이라고 규탄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2단독 유아람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업무상과실치상‧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크레인 참사 관계자들에게 각각 선고 판결을 내렸다.

이 사고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내 선박건조 현장에서 골리앗 크레인과 지브크레인이 충돌해 크레인 잔해가 인근에 마련돼 있던 노동자 휴게실과 화장실을 덮치면서 발생했다.

 

◆크레인 신호수들은 집행유예형, 나머지 벌금 또는 무죄

재판부는 골리앗 크레인 주신호수 이모(50)씨에게 금고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골리앗 크레인 보조신호수 정모(34)씨에게 금고 1년6월, 집행유예 3년, 240시간 사회봉사 명령, 골리앗 크레인 보조신호수 김모(40)씨에게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 사회봉사 명령, 골리앗 크레인 보조신호수 장모(46)씨에게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 12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했다.

또 지브크레인 주신호수 이모(67)씨에게 벌금 700만원, 지브크레인 운전수 박모(43)씨에게 벌금 500만원, 하청업체 현장반장 장모(50)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어 원청업체인 삼성중공업 직장 최모(49)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과장 류모(37)씨는 무죄, 부장 이모(54)씨 무죄, 지브크레인을 맡은 하청업체 대표 이모(68)씨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재판에서 가장 쟁점이 된 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장 김모(63)씨와 원청업체 삼성중공업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마저도 매월 1차례 개최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데에 따른 것이다.

법원은 김 전 조선소장과 삼성중공업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안전조치 의무‧산업재해예방조치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번 판결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결국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신호수들은 집행유예형을, 간접적 책임이 있는 원청이나 하청업체 관계자들은 벌금형이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 선고 판단 근거는?

재판부는 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지브크레인이 작업 중인데도 골리앗크레인이 가까이 접근한 점 ▲충돌 후 부서진 구조물이 낙하한 곳 부근에 하필 간이화장실과 흡연 장소가 설치돼 있어 근로자들이 다수 모여 있던 점으로 구분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삼성중공업의 규정이나 지침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어도 피고인들에게 이번 사고에 대한 업무상과실을 묻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상당한 인과 관계가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설비나 장구를 갖추지 않아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런 설비 등을 갖췄다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를 비교적 용이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면 규정이나 지침은 그 존재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결국 작업자들이 이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규정 등이 존재하지 않을 것과 사고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현장 작업자들이 그런 규정 등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사고를 초래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점이 증명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런 규정이 없어 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양 크레인은 무전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전달했는데도 사후 확인을 소홀히 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며 “이 사고는 본질적으로 기존 규정이나 지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안전대책과 규정 미비가 실질적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삼성중공업 상급관리감독자들과 하청업체 상급관리감독자는 현장반장과 반원들에 대한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인정되지 않고, 이들이 담당한 안전대책이나 규정에 이 사고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 미비점이 있음이 증명되지 않아 업무상과실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사고 당시 현장 반원들의 실제 작업현황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어 전 조선소장, 삼성중공업, 하청업체 대표에 대해 안전조치 의무‧산업재해예방조치 의무 위반에 따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동계 “원청업체에 면죄부 주는 말도 안 되는 판결” 일갈

이 선고와 관련해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성명을 내고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 판결에 분노한다”고 일갈했다.

경남본부는 “이 사고 원인 조사를 맡았던 ‘조선업 중대재해 국민참여 사고조사위원회’에서도 원청 사업주가 지브형크레인 설치 시 위험성 평가를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중공업이 구체적으로 골리앗크레인과의 충돌 위험을 평가하고 관련 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았고, 삼성중공업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내도급 노동자를 동시에 투입해 작업하도록 지시한 점 등이 사고 피해가 컸던 이유라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경남본부는 “그런데도 안전관리에 책임을 지고 있는 원청과 원청 관리자에게 면죄부를 준 재판부의 판결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이 판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소도 되지 않은 사업주, 삼성중공업에 면죄를 준 이 판결은 반드시 역사와 노동자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직사업부장은 “안전관리 책임이 분명히 드러난 사고인데도 원청업체에 면죄부를 준 이 판결은 조선소 사정을 너무나도 모르는 판사의 판단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현행법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산업재해 시 원청업체의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하는 이유가 이번 판결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고 했다.

거제=강승우 기자 kka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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