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10년 장사 접어요”…대형유통만 5개, 하남 소상인 ‘위기’

“어버이날? 10년 장사 접어요”…대형유통만 5개, 하남 소상인 ‘위기’

‘이마트·홈플러스·스타필드에 ’코스트코‘까지…고래싸움에 ’새우등‘ 어찌하나 [르포]

기사승인 2019-05-08 01:00:00

경기도 하남시 신장시장에서 10년간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강현숙(58·가명) 씨는 오는 10월까지만 가게를 운영하기로 했다. 하남시가 최근 대형 유통업체의 '각축장'이 되면서 재래시장에 더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오늘 10명도 안 다녀갔다”라며 옷깃에 꼬깃꼬깃 넣어뒀던 지폐 몇 장을 꺼내보였다. 강씨는 “한 달 100만원도 못 벌어간다”면서 “식당의 일자리라도 구해 정기적 수입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라고 토로했다. 

어린이날 연휴가 시작됐던 지난 4일. 오후 6시께 찾은 신장시장은 연휴 첫날임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인구 26만의 도시에 이마트, 트레이더스, 홈플러스와 스타필드 등 무려 5개의 대형 유통사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재래시장은 '찬밥 신세'가 된 탓이다. 며칠 전에는 미국의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가 정부의 개점 연기 조치를 무시하고 ‘배짱’ 영업까지 강행했다. 점점 좁아드는 입지에 인근의 신장시장, 덕풍시장 상인들의 근심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약 95만의 인구에 입점 대형마트는 4곳뿐인 성남시와 비교하면 하남시의 대형마트 밀집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소비자의 구매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데 지나치게 과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강씨는 “(대형마트들이) 죽자고 서로 덤벼들면 재래시장은 버틸 재간이 있겠나”라면서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돼도 사람들은 안 온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시대가 변하는 걸 어쩔 수 있겠나, 당연히 대형할인점으로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상인들도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지켜봐 주고 같이 사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줬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보통 저녁 시간의 시장은 찬거리를 구입하려는 사람, 일을 마치고 반주 등 저녁을 먹으려는 손님들로 붐비기 마련이다. 하지만 신장시장은 고령층의 단골손님들이 간간이 과일과 채소 등을 구입하는 정도에 그쳤다. 인근 식당들은 한두 테이블에만 손님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젊은 층은 스타필드 등의 쇼핑 시설로 옮겨 간지 오래고 중년의 부부들은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최근의 코스트코는 또 다른 근심거리다. 

신장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희수(39·가명)씨에게 기자가 코스트코의 몇몇 할인 육류 가격을 알려주자 “소상인들은 대항할 수 없는 가격”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대량으로 구매해 대량으로 팔아버리는 코스트코는 육류와 채소류도 상당한 매출 주력 상품으로 밀고 있는 중이다. 조씨는 “흙을 파기 전에 반대를 했어야 한다”면서 “(코스트코) 건물까지 다 올린 상황에 이제 무슨 소용이 있겠냐”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이 점점 심화된다는 점이다. 하남시의 상권을 놓고 대형 유통사간의 경쟁이 본격화하면 재래시장은 고래 싸움의 새우등이 터지는 모양새가 된다. 이 과정에서 하남 소상공인의 몰락은 물론 풍산지구, 신장지구 등 구도심의 슬럼화 우려도 제기된다. 

24년간 신장시장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영화(61·가명) 씨는 "그나마 자주 오던 고령층의 단골손님들도 가족과 함께 신도심인 미사지구로 이사하고 있다"라며 "갈수록 구도심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큰 문제"라고 호소했다. 또 김씨는 "대형마트들이 도심 입구에 하나씩 자리 잡고 있어, 신도심인 미사지구에선 (구도심인) 이곳까지 장을 보러 오지 않는다"면서 "앞으로가 더욱 막막할 따름"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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