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대란이 코앞이다. 이미 소각장 처리용량은 120%를 넘어 법정 한계치인 130%에 치닫고 있다. 일부업체의 소각로는 끊이지 않는 의료폐기물에 폭발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폐기비용도 2배 가까이 뛰었다. 웃돈을 주고도 폐기물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실제 인천의 한 요양병원은 지난해 8월 기존에 계약했던 의료폐기물 수집·운반업체의 소각로가 폭발하며 의무적으로 의료폐기물을 처리해야하는 기간을 지킬 수 없게 됐다. 이후 인천은 물론 경기도 전역에 위치한 의료폐기물 수집운반업체를 수소문했지만 지난 2월까지 받아준다는 업체를 찾지 못했다.
업체들은 이구동성 모든 소각장이 소각량 초과로 처리해줄 업체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소각로 증축허가를 받은 업체조차 소각물량이 밀려 이미 증축분을 초과한 실정이라 정상화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며 거래를 거절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관할 구청은 의료폐기물처리유예승인을 거부했다. 천재지변과 같은 사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에 요양병원 관계자는 “8월부터 운반수집업체는 물론 관할관청에 한강유역환경청에까지 연락했지만 방법을 못 찾고 있다. 그 사이 의료폐기물은 쌓여만 가고, 법으로 정해진 14일 내 처리규정은 벌써 지나 벌금까지 내게 생겼다”면서 “폐기물 처리도 문제지만 만약 2차 감염이라도 발생하면 누가 책임져야하느냐”고 답답함을 전했다.
◇ 급증하는 의료폐기물, 다가오는 감염의 공포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에 따르면 2013년 14만4000톤(t) 규모였던 의료폐기물이 4년 후인 2017년 44%가 증가한 20만5000톤(t)에 이르렀다. 이는 전국 13개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의 한계처리량에 거의 육박한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문제는 의료폐기물 대란을 막을 여러 대책이 있음에도 시도조차 할 수 없어 정부도, 의료기관도 발만 구르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결국 의료폐기물 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폐기물의 생산을 억제하고 처리량을 늘려야하지만 둘 모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당장 대표적인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폐기물소각장, 그 중에서도 각종 화학물질과 세균으로 오염된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을 반길 지역민은 없다시피 하다. 지난달 26일 경상북도 고령군의회는 다산면 의료폐기물 소각장 증설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의료기관의 의료폐기물 배출량 절감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1회용품 사용이 늘고 있고, 폐기물 관리기준 또한 촘촘해져 의료기관 자력으로 폐기량을 줄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구나 국민이나 의료기관 종사자들은 일반쓰레기와 의료폐기물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혼합해 버리기 일쑤인데다, 감염위험이 높은 의료폐기물 특성상 비용과 인력의 부담으로 엄격한 분리배출을 통한 소각량 절감도 한계가 있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의료폐기물 시설을 신·증축하기 위해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민과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의료폐기물 분리배출을 위한 교육과 지침안내 등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고 토로했다.
◇ 예고된 의료폐기물 대란, 방책은 없나?
이처럼 국민과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인식과 습관을 바꾸는 등 장기적 대책 외에 코앞으로 닥친 의료폐기물 대란을 막을 방법은 없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있지만 당장 시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동·식물이 된 국회’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현 20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와 교육위원회(교육위)에 각각 의료폐기물 관련 법안이 계류돼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지난 1월 9일 발의한 의료폐기물 관리법 개정안과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21일 발의한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먼저 전현희 의원의 법안을 살펴보면, 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의 신규설치 및 증설이 어려운 실정에서 의료폐기물 처분이 어려울 경우, 환경부 장관이 환경오염이나 인체위해도가 낮은 의료폐기물에 한해 지정폐기물 중간처분업자에게 이를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등 교육시설 주변의 환경을 엄격히 정하고 있는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교육환경보호구역에 폐기물 관리법에 따른 폐기물처리시설의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규정을 완화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폐기물처리시설의 설치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대학병원 등 교육시설과 근거리에 위치해 교육환경보호구역에 편입된 의료기관들이 ‘자가 멸균시설’을 설치해 의료폐기물에 의한 감염위험을 낮출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료기관들의 요청을 반영한 법안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두 법안 모두 환경부와 교육부의 주요법안으로 국회만 열리면 가장 우선순위로 검토가 될 수 있다”며 “이들 법안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닐지라도 통과만 되면 예견된 의료폐기물 대란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의료계는 환경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020년까지 2017년 기준 의료폐기물 배출량의 20%를 줄이겠다거나 분리배출을 엄격히 하라는 등의 계획과 요구를 하면서도 정작 이를 이행할 구체적인 지원이나 방안은 내놓지 않고 까다로운 의료폐기물 기준만 강요한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단순히 고령화나 의료기관, 환자의 증가로 의료폐기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더 많은 양을 의료폐기물로 만들었다. 그리곤 별다른 지원도 없이 배출량을 줄이라고 하니 답답할 뿐”이라며 “수년째 문제가 반복되는데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고 꼬집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