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은 단연 흉부외과의사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인 ‘심장’을 담당하며 칼(메스) 끝에서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만 주인공이다.
흉부외과의사의 고뇌와 사명을 다룬 감성적 이야기와 TV 속에서 펼쳐진 화려한 인술이 ‘몰락’을 막아내고 있다는 웃기지만 슬픈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현실의 흉부외과 의사들은 고독과 고난을 십수년째 호소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대표적인 기피과목 중 하나로 꼽혀 인력수급에 난항을 겪고, 급기야 과장급 전문의가 막내를 하는 상황도 벌어지는 실정이다.
여기서 문제가 끝나면 다행이다. 어느 것이 원인이고 시작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흉부외과의 몰락은 오래 전 얘기지만, 결과적으로 심장병을 가진 환자들은 수도권으로 몰렸고 지역 의료기관의 수술건수는 줄어들었다. 수술건수가 줄어드니 의사들의 임상경험이 적어져 환자의 생명을 좌우할 수술의 질조차 낮아지고 있다.
병원들은 환자가 떠나고 수술의 질이 낮아지며 수익이 악화되자 이를 이유로 과에 대한 지원을 줄이거나 투자를 꺼리게 됐고, 흉부외과 전문의가 되려는 전공의들이 줄어들고 지원률은 떨어졌다. 당연하지만 인력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존에 근무하고 있는 인력들의 업무강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다.
그럼에도 흉부외과 의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고, 자신들의 존재이유가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던 듯하다. 부흥의 불씨를 살릴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던 ‘국가심장수술센터’는 굳은 다짐과 10여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권에서조차 이루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지난 10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국가심장수술센터 논의는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5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들 14명이 지역사회 심장수술의 부활을 고민한 끝에 각 병원별로 흩어진 인력과 장비, 예산을 하나로 모아 ‘통합심장수술센터’를 만들고, 만성적인 인력 및 지원 난을 해소하고 더 좋은 진료환경과 질로 더 많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난 2013년 6월, 이들의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거뒀다. 사단법인 메디시티대구협의회, 경북대병원,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대구가톨릭대의료원, 영남대의료원, 대구파티마병원, 대구광력시는 ‘메디시티 심장센터’ 설립추진협약을 맺었다.
총 422억원을 들여 수술실과 CR·MRI 등 첨단장비를 갖춘 심장검사실을 완비한 60병상 규모의 통합수술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구상도 발표했다. 여기에 보건복지부도 한 손 거들었다. 2016년도 예산안에 가칭 ‘대구국가심장센터’ 설립예산 30억원을 책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예산편성을 위한 설립타당성조사가 미흡하다며 관련 예산을 삭감하며 발생했다. 예산 삭감 후 진행된 1, 2차 설립 타당성 조사결과도 발목을 잡았다. 조사연구에서 지역별 혹은 권역별 통합심장수술센터를 갖추고 국가심장수술센터에서 환자의 배분부터 의료서비스 및 수술의 질 관리까지 총괄하는 체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자원 요구도나 미충족 수요, 경제적 타당성 등의 측면에서 충청권이나 전라권이 보다 적합하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의지를 갖고 적극 나섰던 곳과 필요한 곳이 달랐던 셈이다. 이후 지금까지 국가심장수술센터 설립요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요구하는 목소리도, 반대하는 목소리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흉부외과의 재도약은 점차 힘들어지는 듯했다.
◇ 지난한 기다림에도 끝은 있다?
오는 6월 전후면 흉부외과의 부활, 국가심장수술센터 요구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나올 전망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근 복지부는 보건산업진흥원에 맡겨 추진했던 국가심장수술센터 설립방안과 국가심혈관센터 설립타당성에 대한 연구용역의 검수에 들어갔다. 이르면 6월 초 결과보고서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4인 중 1인이자 이번 과제를 수행했던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흉부외과 박남희 교수는 “2016년 예산삭감과 설립타당성 연구결과로 잠시 주춤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국가심장수술센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했던 만큼 이번 연구를 통해 지역 색을 없애고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모델을 구상하고 국가단위에서 연계방안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대로는 심장병 환자들의 생명이 점점 더 위협받게 된다. 그 방안이 국가심장수술센터”라고 강조하며 “일본의 형태처럼 수술실적이 적으면서도 수술의 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과 통합수술센터를 설립해 지역별로 환자를 통합관리하는 방안 등 운영형태와 방식 등 다양한 방향에서 고민해봤다”고 부연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결과보고서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 교수는 “연구보고서는 국가심장수술센터의 필요성과 설립방향, 운영방식 등을 담았지만 설립의 근거가 될 뿐”이라며 “보고서가 나왔다고 바로 센터를 설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흉부외과 내부에서도 아직 찬반이 엇갈리는 만큼 많은 논의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번 정권 내에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을 통해 관련 연구를 추진한 보건복지부 또한 “보고서는 검수에 들어가 6월에는 발표될 것”이라면서도 “보고서는 설립을 위한 근거일 뿐이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해 합의를 도출해 설립을 결정하더라도 예산을 확보하는 등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권 내 설립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