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200원에 근접했지만 달러화 예금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달러를 1200원에 매입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 다고 전망하는 투자자들이 예금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미중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이 보유한 달러 정기예금 규모는 이달 17일 현재 130억6775만 달러로 전월 말보다 2억475만 달러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17일 만에 지난달 증가폭 2억700만 달러에 근접한 수준이다.
은행 외화 정기예금은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135.00원에서 1167.00원으로 급등하는 사이 2억700만 달러 가까이 늘어났다. 이후 이달 들어 8일까지 원·달러 환율이 1172.50원으로 추가 상승했지만 달러화 정기예금도 1억 달러 가까이 증가했다.
환율과 외화예금의 동반 상승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17일 환율이 1195.50까지 상승해 1200원 진입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외화 정기예금은 8일 이후 1억1275만 달러 추가로 늘어나며 증가세를 확대했다.
일반적으로 환테크로 불리는 달러 투자는 환율이 하락할 때 저점에 달러를 구매해 환율이 상승할 때 매각하는 방식으로 환차익을 남긴다. 그럼에도 환율과 외화예금이 동반상승하는 것은 환율의 상승여력이 앞으로도 충분히 남아있다고 보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환율의 추가 상승에 배팅한 이들은 미중 무역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초 미중 무역협상은 지난달만 하더라도 5월 말로 예정된 양국의 정상회담을 끝으로 봉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따라서 환율도 안정화 기조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5월 들어 미중 무역협상이 중단되고, 양국이 총 2600억달러 규모의 관세 인상 카드를 교환하면서 미중무역 협상은 오히려 격화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의 장기화 영향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고, 국내 수출 및 IT 업황이 둔화되면서 달러 투자를 부추긴 것.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밴드와 관련해 미중무역협상 불안감이 지속된다면 원·달러환율이 1180~1250원선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악의 상황, 즉 미중 무역협상이 최종결렬되면 원·달러환율이 1250원선을 상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환율 상승에 배팅한 이들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추가적인 환율 상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고점에 달러를 매입했다는 우려다.
은행 한 관계자는 “달러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기위해서는 수수료 등을 제외할 경우 25~30원은 환율이 상승해야 수익이 발생한다”며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나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외화예금은 중소기업 등이 달러에 대한 실수요를 고려해 가입하는 것으로 일반 투자자가 환차익을 노리고 가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상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1200원선을 상회하는 오버슈팅이 가능하나 중기적으로는 재차 하향 안정될 가능성에 비중을 둔다”며 “한국 외환당국의 구두 및 실제 시장개입 가능성이 높고, 6월에는 미중이 재차 협상 회담에 나설 가능성이 커 동 시점에서 원화가치의 하락세 역시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