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길에는 2개의 볼거리가 있다. 하나는 아이헨도르프 비석(Eichendorff Stone)과 메리안의 강단(Meriankanzel)이다. 철학자의 정원에 있는 아이헨도르프 비석은 ‘독일 숲의 시인’이라고도 하는 요제프 폰 아이헨도르프(Joseph Von EichenDorff)의 모습을 새긴 동판을 붙인 사암 기념비다. 아이헨도르프는 독일 후기 낭만파 시인으로 소설가이며, 향토색 짙은 많은 서정시를 남겼다.
또 다른 하나인 메리안강단(Merian-Kanzel)은 마트호이스 메리안(Matthäus Merian)이 1620년에 제작한 것으로 하이델베르크의 전경을 새긴 것이다. 메리안강단은 아이헨도르프나 횔더린(Hölderlin) 같은 시인들에게 시적 영감을 주었다. 철학자의 길 동쪽 끝에는 ‘나는 오랫동안 너를 사랑했다’라는 하이델베르크 송가를 적은 횔더린에게 헌정된 정원이 있다.
철학자의 길 중간에 있는 놀이터 근처에는 추모비(Gedenkstein Memory Stone)가 하나 있다. 산책로에서 살짝 들어선 좁은 장소에 서 있는 나무 밑으로 기대어 있는 이 석비는 리셀로테 플라츠(LISELOTTE-PLATAZ)라고 적혀 있다. 루이 14세의 동생 필립 오를레앙(Philippe d'Orleans) 공과 결혼한 엘리사벳 샤를로트(Elisabeth Charlotte)를 추모하는 기념비다.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에서 살던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뒤에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왔다.
철학자의 길이 나있는 해발 440m 높이의 하이리겐베르그(Heiligenberg)의 정상에는 이 지역에 정착한 다양한 종족의 유적이 남아있다. 9세기 무렵 프랑크왕국의 두 번째 왕조인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시기에는 아베린스베르크(Aberinsberg)라고 불렀던 것을 13세기 무렵 검은 숲 지역에 있는 모든 성도의 수도회에서 온 프레몬트레 수사(Premonstratensian)들이 이곳에 두 개의 수도원을 건설하면서 ‘모든 성도의 산’이라는 의미로 알러하이리겐베르크(Allerheiligen-Berg)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하이리겐베르크는 네카르 강 계곡과 주변 평야를 굽어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기원전 11세기 무렵 이 지역에 들어온 켈트족이 기원전 4세기 무렵 언덕의 꼭대기를 중심으로 이중의 요새를 지었다. 당시의 유적으로는 비터스브룬넨(Bittersbrunnen)이라는 샘터가 1979년에 발굴됐다. 로마제국 시절에도 이곳은 성지였는데, 9세기 무렵에 건설된 성 미카엘 수도원 유적의 애프스 부근에 상업과 교역의 신,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신전이 있었다.
지금 남아있는 성 미카엘 수도원은 1023년에 초기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은 것이다. 낮은 봉우리에는 11 세기 말에 지은 성 스테판 수도원의 폐허가 남아있으며, 19세기 들어 성 스테판 수도원의 유적에 흩어진 돌을 사용해 지은 하이리겐베르크 탑(Heiligenberg Tower)을 볼 수 있다.
10시 무렵,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로텐부르크(Rothenburg)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로텐부르크로 가는 길에는 고성가도(Burgenstraße)를 이용했다. 도로가 잘 정비된 독일에서 에리카, 메르헨, 괴테, 고성, 로만틴, 알펜, 판타스틱 등 7개 가도는 도로 주변의 경치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 고성가도는 1954년에 설립된 독일 남부의 도시들을 연결하는 것으로 만하임(Mannheim)에서 출발해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하일브론(Heilbronn), 슈바비슈 할(Schwabisch Hall), 로텐부르크(Rothenburg), 뉘른베르크(Nurnberg), 밤베르크(Banberg), 바이로이트(Bayreuth)를 연결하는데, 1994년 체코의 프라하까지 연장돼 무려 1000km에 달하는 거리다.
가도 주변에는 중세 무렵에 건설된 50여개의 고성이 흩어져 있다. 고성가도는 네카르 강을 따라가는 터라 단조롭다는 느낌이 든다. 강을 따라 양편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그림 같은 집들이 들어서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숲으로 덮여 있다.
로텐부르크(Rothenburg)는 바이에른주에 있는 도시로 ‘타우버 강 위의 붉은 요새’라는 의미를 가진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Rothenburg ob der Tauber)라는 긴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것이다. 프랑크 왕국시절인 9세기 무렵 건설됐다. 950년 콤부르크-로텐부르크 백작이 지금의 로텐부르크 성의 정원의 가장자리에 둑을 쌓은 것을 시작으로 1070년에 로텐부르크 성을 지었다.
1116년 마지막 콤부르크-로텐부르크 백작이 사망하자.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5세 황제는 조카인 콘라드 폰 호헨스타우펜(Konrad von Hohenstaufen)을 후계자로 임명했다. 1170년 콘라드는 로텐부르크에 스타우퍼(Staufer)을 건설하고 로텐부르크시 중심에 시장과 성 야콥(St. Jakob) 교회를 지었다. 13세기 무렵 성벽과 성탑을 건설했는데, 백탑(Weißer Turm)과 뢰더 홍예(Röderbogen)가 있는 마가 성인의 탑(Markusturm)이 남아있다.
해발 435m의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백탑은 높이가 33.5m에 달하며 교수대 거리라는 의미의 갈겐가세(Galgengasse)에 있다. 마가 성인의 탑은 웅장한 모습의 저택에 붙어있다. 첨탑이 얹혀진 날씬한 시계탑으로 로텐부르크에서 가장 인기를 모으는 장소다.
1274년 로텐부르크는 합스부르크 왕 루돌프 1세에 의해 자유 제국도시로서의 특권을 부여 받았다. 30년 전쟁이 벌어지던 1631년 10월, 가톨릭 진영의 틸리(Tilly) 백작이 4만의 군사를 이끌고 루터교를 지지하던 로텐부르크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후 시의회 의원 전원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려했던 틸리 백작은 로텐부르크의 와인이 뛰어난 것을 알고, 조건을 내걸었다. 로텐부르크의 와인 3.25리터를 단숨에 마시는 사람이 있으면 처분을 면해주겠다고 한 것. 이에 당시 시장이던 게오르그 누쉬(Georg Nusch)가 나서 와인 마시기에 성공했고, 틸리 백작은 약속을 지켰다. 누쉬 시장은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됐다고 한다.
로텐부르그 성 밖에서 버스를 내려 성문으로 들어서면 중세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작은 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차 1대 지나는 것도 버거울 듯한 좁은 거리를 걸으며 중세의 정취를 즐기다 보면 눈앞 탁 트이는 광장에 이르게 된다. 시장광장(Marktplatz)이다. 광장 오른쪽으로 아치가 이어진 회랑이 있는 건물이 시청이다. 시청 뒤로는 역사박물관이 있다.
시청광장의 위쪽에 있는 하얀 건물은 관광안내센터가 들어있는데, 옛날에는 참사관 주점(Ratstrinkstube)이었다. 건물 위쪽에 걸려있는 천문시계는 1683년에 설치된 것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 시간 마다 틸리 백작과 누쉬 시장 사이에 있었던 시합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고 있다.
로텐부르그 관광안내소의 광장 끝에는 고풍스러운 건물 2채가 서 있다. 왼쪽에 서 있는 건물은 정육과 춤의 집(Fleisch- und Tanzhaus)이다. 위층에는 댄스플로어가 아래층에는 정육점이 들어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위층이 예복을 취급하고, 지하실이 현대미술과 관련된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됐다.
오른쪽은 마리엔 아포테케(Marien Apotheke)-야그스타이머하우스(Jagstheimerhaus)다. 1488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사냥꾼을 위한 것으로 신성로마제국 막시밀리안(Maximilian) 황제가 묵은 바 있다고 한다. 로텐베르그의 상징인 목골조 건물(Fachhaus) 양식의 전형으로 1812년 이후 지금까지 약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건물과 시장광장 사이에는 조지 성인의 분수(Georgsbrunnen)가 있다. 1608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조성한 8m의 분수는 하루 100톤(t)의 물을 공급하는 로텐부르그 최대의 분수다.
시청광장과 조지 성인의 분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면 로텐부르그 성의 정원이 있다. 성탑과 성문을 지나 정원으로 들어서면 넓게 조성된 공원을 볼 수 있다. 정원은 타우버 강이 감아 도는 계곡을 향해 돌출돼 있는데, 절벽 위에 성벽을 쌓아 수비를 보강했다.
정원에는 11세기 무렵 건설됐던 궁전이 1356년 지진으로 무너진 후 정원 동쪽에 남아있던 건물을 재건해 사용한 블레이즈 성인을 위한 예배당(St.-Blasius-Kapelle)이 있다. 예배당은 20세기 초에는 보석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으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사망 한 독일 군인의 이름을 새긴 동판이 걸려있고, 입구 맞은편에는 스테인드글라스와 군인의 청동상이 서있다. 건물 서쪽 벽의 북쪽 가까이에는 작은 비석이 서 있는데, 1298년 6월 25일 로텐부르그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사건으로 불타 죽은 500여명의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1998년 세운 추모비다.
정원의 끝에 가면 14세기 말 로텐부르그의 시장을 맡아 전성기를 이끌었던 하인리히 토플러(Heinrich Toppler) 시장의 기념비가 서 있다. 정원 끝 성곽에서 타우버 강변의 계곡을 굽어보면, 붉은 지붕에 하얀 벽을 가진 아담한 집을 볼 수 있는데 이 집이 바로 토틀러의 작은 성(Topplerschlösschen)이다. 또한 정원에서는 1870~1871년 사이에 일어났던 보불전쟁에서 희생된 로텐부르그 출신 군인을 추모하는 비도 볼 수 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