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최순삼(전라북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관)
유럽에서 17세기 이후 형성된 근대 국민국가는 현재까지도 주권과 인권을 담보하는 세계질서의 중요한 단위이다. 한민족에게 평화와 통일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한반도에서 완전한 국민국가 형성을 가로막은 외세와 일제강점기, 20세기 중반 냉전체제의 산물로서 분단, 지금도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짓눌림을 벗어나게 하는 시대적 과제이며 소중한 가치다. 한걸음 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통일의 가능성은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시금석이다.
전북교육청은 2010년 이후 어려운 조건에서도 남북한 공생 공존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면서 교육공동체의 남북교육교류를 실현하기 위한 '전라북도교육청 남북교육교류 협력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교육교류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고 교원과 학생의 평화통일교육을 위한 정책수립과 교육을 꾸준하게 실행해오고 있다.
이번 2019 전라북도교육청 북‧중 접경지역 현장탐방 연수는 14개 교육지원청에서 평화통일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전문직과 학교현장 교원들에게 변화하는 통일 정세 속에서 평화통일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실천력을 높여가기 위한 연수로 기획되었다.
지난 7월 30일 새벽 3시, 눈 비벼가며 전북교육청 주차장에서 초‧중등 교장(감) 6명, 지원 담당 교육전문직을 포함하여 총 37명의 교원들이 8월 4일까지 진행되는 북‧중 접경지역 평화통일 현장탐방 연수에 나섰다. 똑 같은 여정은 아니지만 이미 두 차례 접경지역을 다녀왔기에 전체인솔 책임을 맡고도 덜 긴장 되었지만, 부담은 컸다. 현지에서 주의할 점과 날씨, 음식 등에 대하여 숙지했지만 하루 6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접경지역을 이동하는 연수일정은 만만치 않았다.
용정(윤동주, 송몽규 생가)-도문(두만강)-백두산(천지, 장백폭포)-장백현(북한 혜산시 등 압록강변 마을 조망)-통화(압록강 하류)-집안(광개토왕비, 광개토대왕릉 장수대왕릉)-단둥(압록강 단교, 북한 신의주 조망)-대련(여순감옥, 관동법원구지) 탐방연수 일정이 진행되면서 선생님들은 날마다 복잡한 심정과 안타까움, 그리고 교육자로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성찰과 다짐을 갖는 시간들이었다.
윤동주 외삼촌 김약연과 애국지사들이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명동에 자리를 잡아 항일운동을 하면서 민족독립과 미래를 위한 교육 사업에 혼신을 다하면서 윤동주, 송몽규, 나운규, 문익환과 같은 한국 근현대사에 문화민족의 자랑인 인물들이 명동중학교 출신이어서 새삼 교육의 위대성이 느껴졌다.
백두산 천지의 웅장하고 한없이 맑고 맑은 물은, 그대로 '한민족의 상징' 이었다. 백두산을 기점으로 남으로 흐르는 압록강을 보면서 10시간 이상 통화까지 내려오면서 본 북녘마을과 산하는 여전히 30년 전 남한에서 보았던 마을을 연상케 하였다. 겨울철 난방을 위한 땔감 사용과 식량 부족으로 마을 주변 산들은 태반이 민둥산이었지만 5년 전에 봤던 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그리고 혜산시에는 색깔이 다양한 아파트도 상당히 신축되고 있었다. 압록강 강변에 암소가 몇 마리씩 풀을 뜯고 있었는데, 그래도 소가 있어야 옥수수 농사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반면에 버스가 이동하는 중국측 농촌에는 육우가 주로 길러졌고, 트랙터 등 농기계가 마을마다 보여서 착잡하였다.
광개토대왕비는 동북공정 차원에서 고구려 역사를 축소하여 중국의 한 지방의 왕으로 호태왕비로 설명되어 있었고, 광개토대왕릉은 전에 보았을 때보다 더 많이 훼손된채 방치되어 있었다. 장수대왕릉은 웅장함과 왕릉(총)으로서 여전히 위엄이 있었으나 역시 중국 정부가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보였다. 고려시대까지 만주지역은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이었으며, 근대 국민국가가 만들어지면서 국경선이 분명하게 그어 졌지만, 전통국가에서는 국경근방에는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인 경우가 많았다. 간도지역은 우리민족에게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도 변경지대로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는 중립지대 성격을 가진 땅이었기에 항일투쟁의 근거지가 되었던 것이다.
단둥에서 북한 신의주로 연결된 철교가 한국전쟁 때 끊어진 상태로 칠십년 가까이 그대로 있었고, 수풍댐 근처의 1940~50년대 지어진 북측 공장에서 뿜어대는 연기는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상흔이 북‧중 접경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웅변해 주고 있었다.
마지막 일정은 뤼순감옥과 관동법원구지 참관이었다. 관동법원구지에 마련된 안 의사 영정 앞에서 젊은 선생님들은 흐느꼈고 나이든 선생님들은 연신 눈물을 닦았다. 하얼빈에서 이등방문을 1909년 10월 26일 사살하고 “대한 만세”를 외친 후 안 의사는 ‘대한의 의병장’으로서 적장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뤼순감옥에서 144일 동안 안 의사는 예의 바른 언행과 당당한 행동으로 감옥에서 일하는 일본인까지도 감명을 받았으며,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였다. 형 집행으로 완성하지 못한 동양평화론은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각국이 자주 독립 국가를 전제로 하여 뤼순을 영세중립지역으로 삼아 상설평화위원회를 구성하고 평화위원회가 각 국 군대를 공동 관리하여 분쟁을 막고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 등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앞세워 한국을 침략하고 동양평화를 깨뜨렸기에 안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 그를 사살한 것은 당연한 거사다. 안중근 의사는 진정한 문명국의 문화인이고 평화주의자다. 또한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주요한 이유 중에는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가 있음을 진술하여 안 의사의 교육구국의 신념을 확인 할 수 있다.
연수 후 교원들에게는 바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보고회에서 참가교원들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북‧중 접경지역 탐방 내용을 중심으로 초‧중등 교육과정과 연계된 교수-학습지도안을 마련하였고 평화와 통일교육에 대하여 더 많은 동료교사들과 토론하고 인식을 공유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기로 하였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으로부터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