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자들의 여유? 깜깜이 선거 되풀이 우려

가진 자들의 여유? 깜깜이 선거 되풀이 우려

법정시한 넘긴 국회, 선거제 개편 두고 막판 진통 중… “꼭 이번이어야 하나” 의문도

기사승인 2019-08-31 12:49:37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선거제도 도입을 두고 국회는 여전히 정쟁을 거듭하고 있다. 선거제 개편을 앞장서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국회를 뛰쳐나갔다.

관련 법안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통과여부가 불투명한데다, 통과가 돼도 총선까지 4개월여 만을 남겨두고 있어 국민의 선택권이나 공평한 기회를 가질 정치신인의 권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당초 기대했던 국내 정치의 개혁을 달성하더라도 개편되는 선거제도가 가져올 부작용이나 한계로 인해 그 성과가 반감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나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회의에 올라간 선거제 개편방향을 살펴보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들어봤다.

◇ 정치 9단도 어렵다는 선거제 개편안

선거제도를 개혁하자며 여야4당이 모여 구성한 국회 정개특위가 지난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심상정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에는 국회의원 정족수를 현행 300명으로 유지하되 지역구 의석을 253석에서 225석으로, 비례대표를 47석에서 75석으로 조정하는 안이 포함돼있다.

특히 75석으로 늘어나는 비례대표 의석의 경우 지금의 전국단위와 정당득표율에 연동비율 50%를 적용해 6개 권역별로 추천된 비례대표에게 배분하는 방식이 함께 적용된다. 예를 들어 정당득표율 30%를 얻은 A정당이 의석수 60석인 ‘가’ 권역에서 지역구 10석을 확보했다면, 비례대표는 60석의 30%인 18석 중 지역구 10석을 제외한 8석의 절반인 4석을 배분받게 된다.

이 경우 당초 정당득표율에 의해 배분된 18석 중 4석이 남게 되는데, 남은 의석은 석패율을 적용해 권역별로 2명 이내에서 적은 표차로 떨어진 정당소속 후보에게 배분하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은 의석은 권역별로 의석을 배분할 수 있다. 만약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된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보다 많은 지역구 의석을 확보했을 경우에는 비례대표를 선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박지원 의원은 정개특위 간사인 천정배 의원에게 설명을 들은 후 “이걸 이해하는 천재가 있느냐. 나정도 머리를 가진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국민들은 얼마나 어렵겠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반면 법안을 발의한 심상정 의원은 앞서 개정안을 설명하며 “컴퓨터를 칠 때 치는 방법만 알면 되지 그 안에 컴퓨터 부품이 어떻게 되고 이런 것은 알 필요가 없지 않느냐”면서 “산식이 굉장히 복잡하다. 나중에 컴퓨터로 처리하면 된다. 국민들이 산식을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 정치불신, 민심반영에 긍정적? 부정적?… 엇갈리는 정치계

산식의 어려움은 뒤로하고 당장 선거제도를 개편해야할지, 개편하면 어떤 점이 좋아질지 혹은 나빠질지 등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다. 당장 홍영표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시절 “지역주의에 기반한 기득권에서 벗어나 정치불신을 극복하고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해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개정안을 제안한 심 의원은 “지역구 의석이 비례의석수에 비해 높아 대량의 사표(지지자가 탈락해 의미가 사라진 표)를 발생시키고,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 사이의 불일치가 큰 폭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일부나마 해소될 것”이라며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지역주의를 개선해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진출을 촉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최근 정개특위 통과소식을 전해들은 후 “개정안은 완전한 연동제 비례제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다당제 연합정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가져올 것”이라며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거대 양당의 극한대결 정치를 바꾸는 더 나은 정치환경을 바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반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9일 정개특위 결과를 두고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흥정하는 식으로 일체의 정치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30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정의당의 반대를 막으려는 문재인 정권의 치졸한 셈법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며 총력투쟁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정당의 뜻에 따라 선정되는 비례대표 후보와 그 순위로 인해 전문성 강화나 지역주의 타파, 소수의견 존중과 같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정치에 입문하려는 이들의 줄서기가 더욱 심화될 수 있으며, 정당 입맛에 맞춘 인사의 선출로 인해 발생하는 민심의 왜곡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 자정치평론가들, “이미 기울어진 운동 늦춰라” 이구동성

정치평론가들도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신념을 떠나 선거제 관련 범여권 연대가 주장하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일부 인정하면서도 자유한국당과 유사한 우려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보수논객으로 알려진 정치평론가 황태순 씨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발상 자체가 지극히 정략적이고 위헌적 소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제와도 맞지 않는다”면서 “(지금 다당제로 운영되는 20대 국회처럼) 정당의 난립으로 인한 문제가 그대로 혹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봤다.

중도 혹은 진보논객으로 평가되는 정치평론가 배종찬 씨도 정당 난립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어느 정당도 다수당이 되기 어려워 특정정당의 독재는 어렵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정당 간 이념이 첨예하고 연대가 쉽지 않은 정치 환경을 감안하면, 의사결정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정치적 난맥현상이 2공화국 때처럼 재현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평론가 배 씨는 비례대표제가 가지는 공천의 불투명성과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정치적 토양, 직접적인 민심반영을 원하는 국민여론 등도 선거제 개편을 어렵게 할 요인으로 꼽았다. 이어 “개정안 완전통과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너무 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며 통과가능성을 반반으로 내다봤다.

반반이란 평가의 이유를 묻자 그는 “당장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국민들도, 현역의원이나 정치신인도 혼란스럽다”면서 “지역구가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정당 간 충돌은 물론, 기득권 정치인들 간 이기주의와 당내 갈등이 연출되고, 정치신인은 형평성과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더구나 연동형이라는 형식에 집착해 운영에 해당하는 각론은 간과됐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황 씨는 반반이란 전망보다 더 낮은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우여곡절 본회의에는 올랐지만 지역구가 없어지는 의원들이 과연 (본회의에서) 법안에 찬성할지 의문”이라며 “정개특위에서 게임의 룰을 그렇게 날치기 하는 것은 과거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도 없었다. 이렇게 무리해서 과연 원만하게 돌아갈지 두고봐야할 것”이라고 질타 섞인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정개특위로 공직선거법에서 정한 법정시한에 따라 (지난) 3월 15일까지 선거구 획정안과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해야하는 만큼 결정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낸바 있다. 이에 따르면 이미 선거구 획정을 위한 법정 시한이 5개월여를 초과한 셈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신인과 현역의원 간의 형평성고 공정성을 고려할 때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판단해 국회가 선거구 획정을 총선 1년 전까지로 정한 것”이라며 “늦어도 제외국민 투표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12월 26일까지는 선거구가 정해져야한다. 이미 많이 늦었고, 형평성은 깨졌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평론가 배 씨는 “정의당과 민주당 입장에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 진보의 외현이 확대돼있어 정치적 영향력이나 정당 경쟁력을 확대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에 강한 의지를 갖고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겠지만, 불발돼도 기회는 있다”며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자연스러운 공감대와 동의가 먼저 형성돼야한다”고 뜻을 전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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