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내부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구설수에 올랐다.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그의 ‘산은·수은 합병’ 돌발 발언을 두고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익명의 금융위원회 한 간부는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금융당국과 한마디 상의 없이 어떻게 그런 발언을 내놓을 수 있냐”며 “기자간담회에서 사견이 어디 있나”라고 일침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0일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정책금융이 많은 기관에 분산된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며 “산은과 수은(수출입은행)의 합병을 정부에 건의해 볼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은과 수은의 합병은 정부와 전혀 협의된 게 아닌 사견”이라며 “(산은) 내부에서도 검토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국 내부에서는 이 회장이 ‘사견’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기자들을 불러놓고 정책금융기관의 구조조정 문제를 언급한데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금융위 간부는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개편 구상이 있으면 담당 부처 및 합병 대상인 수은과 먼저 상의해야 했다”며 “기자들을 불러놓고 사견이라며 합병구상을 발표한 것은 국책금융기관장으로서 경솔한 행동이였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공식적인 반응 역시 일맥상통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산은과 수은의 합병은 이동걸 산은 회장의 사견일 뿐으로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며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수은의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 역시 이 회장의 발언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동걸 산은 회장의 언급은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산은과 수은은 고유 핵심기능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책금융기관의 지원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각 기관이) 보유한 핵심기능에 역량을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이 회장의 발언을 두고 나오는 금융당국 ‘패싱설’도 당국의 불편한 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금융당국 패싱설은 금융권 대표적인 친(親) 문재인 정부 인사로 평가되는 이 회장이 정책금융기관 재편을 금융당국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 또는 여당과 직접 구상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이 회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인물이다. 이에 금융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된 바 있다.
여기에 여당의 씽크탱크로 자리 잡고 있는 더미래연구소는 ‘정책금융기관, 통합형 체제로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통해 “과도하게 나눠져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을 통합·재편해 정책금융체제를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러한 논란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이 회장의 임기 중 산은과 수은의 합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와 기재부가 모두 반대하는 데다 여야가 조국 사태로 격렬히 대립하는 상황에서 합병을 위한 법 개정이 만만치 않은 영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야 관계가 원만한 상황에서 이야기해도 산은·수은 합병에 난관이 많은데 지금 상황에서 합병이 가능하겠나”며 “이 회장의 발언은 임기 중에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