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값이 떨어졌다고 이걸 바로 시세에 적용하기는 힘들죠. 반대로 돼지열병에 도매가가 6000원까지 뛰었을 때도 이 가격을 유지했어요. 식당 가격에는 반찬비 뿐 아니라 인건비, 임대료 등도 영향을 미칩니다. 안 오른 것이 있나요.”
서울 성동구에서 생고기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모(52)씨는 “돼지고기값이 3000원대로 급락한 것은 맞지만 이 점만 보고 가격을 내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 전보다 낮은 가격으로 폭락했지만, 식당에서는 1인분에 1만1000원, 많게는 1만5000원대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소비자는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거래 기준 돼지고기 도매가는 1kg당 3478원으로 ASF발병 전 가격인 4403원보다 26%가량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시기 4209원보다도 약 21% 낮은 수준이다. 이에 비춰보면, 식당 삼겹살 가격이 왜 떨어지지 않는지 의구심을 가질 법도 하다.
다만, 3478원은 돼지고기 전체(지육)에 대한 가격으로, 삼겹살, 목살 등의 가격이 아니다. 삼겹살 등의 부위를 얻으려면, 지육 상태에서 발골과 손질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 18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냉장 삼겹살의 1㎏당 가격은 1만7810원이다. 보통 식당들은 손질된 삼겹살 1kg을 1만7000원부터 많게는 2만원에 구입해 판매한다. 1인분 200g 기준, 식당 내 추가 손질 등을 감안하면 1kg은 4인분 정도의 양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에 식당들은 가격을 내리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앞서 만난 서씨는 “판매가에는 고기외에도 여러 반찬 가격이 포함된 것을 알지 않느냐”라며 “양파 정도만 가격이 싸졌고, 상추와 오이 등 채소류의 가격은 크게 올라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오히려 도매가가 치솟았을 때 손님이 줄까 가격을 올리지 못 했다”며 “당시 버티는 마음으로 영업을 해왔던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상추 4kg 도매가는 평년 대비 1만8987원보다 169.7% 상승한 5만1200원이다. 배추 4kg 도매가도 1520원으로 평년 대비 685원보다 122% 뛰었다. 깻잎과 오이도 1kg당 평년 가격과 비교해 각각 1만5500원, 3100원으로 59.6%, 69.1%씩 올랐다. 실제로 양파와 마늘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인근의 고깃집에서는 삼겹살 180g을 1만3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 사장 전모(61)씨도 가격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돼지고기값이 다시 떨어졌다고 해도 식당에 들여오는 삼겹살 가격이 크게 낮아졌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외에도 직원 급여와 매장 운영비, 임대료 등도 과거에 비해 올랐는데, 밑지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일시적으로 돼지고기값이 떨어졌다고 곧장 삼겹살 가격으로 연결 되는 것이 아니며, 가격을 인하할 수 없는 요인도 더 크다는 것이다.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도소매점을 운영 중인 김모(56)씨는 “도매가인 3400원은 돼지고기 전체에 대한 가격이지, 흔히 먹는 삼겹살과 목살 가격이 아니다”면서 “보통 도매상이나 가공업체에서 돼지고기를 해체해 삼겹살 등 선호 부위를 분리하면 일반 식당 등이 이를 사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수수료와 운송비, 발골비용 등의 비용이 더 붙게 된다”면서 “돼지고기값이 내렸다고 해서, 식당들이 삼겹살 판매가에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ASF 확산세가 잦아들며 이동 제한 조치가 풀렸고, 그간 지연된 물량이 한 번에 풀려 상승했던 도매가가 폭락했다”라며 “공급은 다시 늘고 있는데, ASF로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낮은 도매가격이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당에선 여러 내부적 요인 때문에 가격을 낮추지 않는 상황으로 풀이된다”라며 “채솟값과 여러 가격 인상 요인 등을 들어 인하에 나서지 못 하는 모습이 소비자들에겐 공감을 사지 못 하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