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 발병전 고기를 사 가셨던 분이, 발병 며칠 후 고기에 얼룩 등이 있다며 사진을 보내 반품을 원하시더라고요. 흔히 있는 얼룩이라고 설명도 드렸는데, 팔아도 찜찜한 마음에 그냥 해 드렸습니다. 평소 하루에 10명 정도는 돼지고기를 사 갔다고 하면, 지금은 1명도 사갈까 말까에요. 구제역 때 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나은 상황이 아닙니다.“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도‧소매점을 운영하는 박근형(44‧가명)씨는 최근 상황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으로 소비자들이 돼지고기 섭취를 꺼리자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박씨는 “ASF확산을 막는 것이 물론 제일 중요하겠지만, 정부가 대대적인 소비 촉진 행사도 벌여주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ASF가 지난달 17일 국내에 첫 발병한 이후 한 달이 흘렀다. 이달 9일 14번째 확진 사례가 나온 이후 잠잠한 상태지만, 경기 연천과 파주에서 ASF에 감염된 멧돼지 폐사체가 계속 발견되고 있는 등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다. 이에 돼지고기 도매가는 널뛰기를 하고 있고, 돼지고기를 찾는 소비자들은 계속 줄어 축산·자영업 종사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만 있다.
ASF는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인수공통전염병이 아니다. 병에 감염된 돼지고기가 유통될 가능성도 없다.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찜찜하긴 마찬가지다. 마장동에서 30년간 장사를 해왔다는 한 상인은 “아직도 ‘돼지고기 먹어도 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ASF가 완전히 사라져도 이후 몇 개월은 더 흘러야 예전만큼 소비가 회복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A대형마트에 따르면 ASF가 첫 발병한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7일까지 국내산 냉장 삼겹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4% 감소했다. B대형마트도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체 돼지고기 매출이 1.1% 줄고, 대신 수입소고기 매출이 9.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대체 수요가 늘면서 닭고기, 오리고기의 매출도 각각 7.6%, 5.2%씩 올랐다.
이같은 소비심리 위축에 폭등했던 돼지고기 도매가는 몇 주 사이 30%가 넘게 폭락했다. 축산유통종합정보에 따르면 전체 돼지고기 1㎏당 평균 도매가격은 ASF 발병 전날인 지난달 16일 4558원에서 18일 6201원까지 폭등했다. 하지만 이달 2일부터 3000원대로 내려앉더니 아예 이날부터는 제주를 제외한 내륙권 도매가가 2000원대로 떨어졌다.
농업관측센터 관계자는 “ASF 확산세가 잦아들며 이동 제한 조치가 풀렸고, 그간 지연된 물량이 한 번에 풀려 상승했던 도매가가 폭락했다”라며 “공급은 다시 늘고 있는데, ASF로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낮은 도매가격이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기조가 이어진다면, 낮은 도매가격이 장기화될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축산 농가는 이미 살처분으로 피해를 받은 상황에서 가격까지 폭락해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지금까지 약 15만 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보상의 적정성을 두고도 잡음이 일고 있다. 이에 정부는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현행 규정상, 최장 6개월까지 지원되는 생계안정자금 기간을 늘리거나, 추가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상태다.
자영업자들은 소비심리 위축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서 삼겹살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모(59)씨는 “발병 전에는 저녁시간, 매장 테이블이 꽉 찰 만큼 장사가 잘되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회식도 줄고 절반가량 밖에 차지 않는다”면서 “며칠 잠잠해서 회복되는 것 같지만, 또 계속해서 확산 사례가 나타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나다”라고 우려했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서모(52)씨도 “손님도 없는데다, 상추와 오이 등 채소류의 가격은 크게 올라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며 “1만5000원 하던 상추 한 박스가 현재 5만원이 넘게 뛰었다. 배추, 깻잎, 오이 등 안 오른 것이 없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어 "(돼지고기) 도매가가 급등했을 때도 가격을 올리지 못했다"며 "근본적으로 손님들이 많이 오길 바랄뿐"이라고 혀를 찼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