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 혐의에 대해 유·무죄 여부를 다투지 않겠다고 밝혔다.
25일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면서 “대법 판결에 대해 유무죄 판단을 달리 다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로 양형에 관해 변소할 생각이고, 사안 전체와 양형에 관련된 3명 정도의 증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의 유·무죄 여부를 다투기보다 형량에 집중해 집행유예 판결을 받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8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 측이 국정 농단 관련 최순실 씨에게 제공한 말 3필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 등을 뇌물이라고 판단하고 파기환송한 바 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이 부회장이 뇌물을 건네면서 했다는 부정 청탁의 핵심인 ‘승계 작업'에 대해서도 공방이 예고됐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 작업' 개념이 최순실 씨 사건 공소장과 대법원 판결, 이번 사건 등에서 확연히 다르다”면서 “판결에 어느 정도 정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특검은 “검찰이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적법하게 중요한 자료를 확보했다”면서 “승계작업이 존재했고, 어떻게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됐으며 대통령의 우호적 조치 없이 불가능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기록을 증거자료로 내겠다”고 반박했다.
이에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은 승계작업을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했고, 부정한 청탁도 포괄적으로 인정해 구체적으로 심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서 “양형이 핵심이고,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오는 11월 22일 오후에 첫 번째 공판 기일로 삼아 유·무죄 판단에 대한 심리를 이어간다. 또 12월 6일에는 양형 판단에 대한 양 측 주장을 듣기로 결정했다.
이날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3가지 사항을 당부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공판을 마치기 전 재판부가 피고인 신분의 대기업 경영인에 당부사항을 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뇌물범죄”라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실효적인 기업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었다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이 사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도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지금도 삼성그룹 내부의 실효적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고 있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이 사건 같은 범죄는 재발할 수 있다“면서 ”실효적 준법감시제도는 하급직원 비리방지만이 아니라 고위직, 기업총수 비리행위를 감시할 수 있는 철저한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벌경영 체제의 폐해를 바로잡고 혁신기업으로의 변화도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대기업집단, 재벌총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며 “국가경제발전을 주도한 재벌체제는 이제 과도한 경제력 집중 현상과 일감몰아주기, 단가 후려치기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아 우리 국가경제가 혁신형 경제모델로 도약하는 데 장애물로 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외 각종 도전이 엄중한 시기에 총수가 재벌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 부장판사는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총수로서 어떤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본 심리에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정 부장판사는 “심리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길 바란다”면서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총수는 낡고 썪은 관행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야 하는지 (고민해달라)”고 당부했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사진=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