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덤' 종영①] ‘퀸덤’ 독한 전쟁에서 착한 서사로

['퀸덤' 종영①] ‘퀸덤’ 독한 전쟁에서 착한 서사로

‘퀸덤’ 독한 전쟁에서 착한 서사로

기사승인 2019-11-01 08:00:00

지난 8월말 Mnet ‘퀸덤’이 첫 방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기존에 활동하던 걸그룹들이 동시 컴백을 준비하며 경쟁한다는 콘셉트가 독특하긴 했지만,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기적으로도 Mnet ‘프로듀스X101’의 조작 논란이 한창 뜨거울 때였다. 첫 방송 다음날엔 Mnet ‘프로듀스 48’도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Mnet의 음악 예능, 그것도 경쟁하고 투표하는 새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가 0에 수렴하는 것이 당연한 최악의 상황에서 ‘퀸덤’은 조용히 닻을 올렸다.

‘퀸덤’은 MBC ‘나는 가수다’와 Mnet ‘언프리티랩스타’의 틀을 가져왔다. 이미 데뷔한 지 수년이 지난 기성 가수들이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깔아준다. 각 그룹 또는 가수가 경연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무대를 마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관객 투표로 순위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두 번 연속으로 꼴찌를 하면 방송에서 중도 하차하는 페널티가, 최종 1위에겐 ‘단독 컴백쇼’라는 베네핏이 주어진다. 각 경연의 1위에겐 다음 경연 순서를 정할 수 있는 혜택도 있다.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헐뜯는 장치를 마련했다. 서로의 무대를 자체적으로 평가한 점수를 결과에 반영하고, 경연 순서에 배제되는 그룹은 점수를 잃는 규칙도 있다. 그 안에서 각 그룹은 페널티를 피하고 싶은 절실함과 1위를 노리는 욕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선 다른 그룹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제작진은 여섯 걸그룹을 잔인하고 전형적인 경쟁 구도 속에 밀어 넣고 ‘컴백 전쟁’이란 부제를 붙였다.

‘퀸덤’은 제작진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그룹을 밟고 공격하는 것엔 주저했다. 단순히 방송을 의식하거나 가요계 선후배 관계를 눈치 보는 것만은 아니었다. 첫 경연 순서를 정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여자)아이들의 큐시트를 떼서 더 높은 위치를 선점할 것을 고민하던 오마이걸 효정은 “만약 우리들이 떼어졌다면 정말 슬펐을 것 같다”며 매너 플레이를 선택한다. 경연 직후 자신들보다 아래로 평가한 그룹에게 적극적으로 미안함을 표시하고, 1위를 차지한 그룹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넨다. 참가자들은 더 독해질 것을 유도하는 제작진들의 규칙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착한 경쟁의 길을 선택해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하나씩 지운다.

대신 참가자들이 선택한 건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과의 경쟁이었다. 마치 제작진이 준비한 동기부여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다는 듯,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과 전보다 더 나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다. 2차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오마이걸은 3차 경연을 준비하며 이전 무대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너무 부담된다”고 했다. 반대로 AOA는 ‘퀸덤’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너나 해’ 무대 직전에 “진짜 우리가 하고 싶었던 무대였다”며 긴장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제작진이 설정한 것과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들의 페널티를 찾고, 베네핏을 만들며 예상치 못한 서사를 보여준 건 출연자들이었다.

‘퀸덤’ 출연자들은 주체적으로 경연 프로그램의 클리셰를 하나씩 깼다. 마마무는 모두가 피하는 경연 순서 1번을 선택해 연속으로 2위를 차지하며 경연 순서보다는 무대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여자)아이들은 1차 경연에서 ‘주술사’ 콘셉트의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여, ‘퀸덤’에서는 음악 방송이나 연말 시상식보다 더 자유롭게 해도 된다는 길을 열었다. 더 나아가 AOA는 ‘너나 해’ 무대로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를 스스로 깨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다른 그룹의 무대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길 망설일 때 오마이걸 승희는 거침없는 리액션으로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보컬 유닛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망설일 때, 러블리즈 케이(kei)는 마마무 화사와 함께하고 싶은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제작진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출연자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변곡점들을 통해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혔고, 덕분에 ‘퀸덤’은 갈수록 새로운 프로그램이 되어갔다.

결국 ‘계급장을 떼고 파격적인 정면승부’를 벌이는 독한 ‘컴백 전쟁’을 예고한 ‘퀸덤’은 걸그룹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착하고 멋진 서사로 가득한 꿀잼 힐링 예능이 됐다. ‘퀸덤’은 6주 연속 화제성 1위를 기록하고, 자체적으로 각종 유행어와 웃음 코드를 만들어냈다. 또 팬들에게 예쁘고 밝은 모습이나 섹시, 카리스마 등 비슷한 모습만 보여줬던 아이돌 그룹들이 얼마나 다양한 콘셉트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얼마나 대단한 무대를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지 입증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멤버 개개인의 끼와 매력을 보여주고 예상치 못한 케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성 아이돌의 매력에 주목한 건 분명 제작진의 신의 한 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프로그램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하나씩 확장·발전시킨 출연자들의 공이다. Mnet은 지금까지 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고 조작 논란에 휘말려 있는지 고민해볼 때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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