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마농의 샘(1986)'과 물의 의의

[정동운의 영화속 경제이야기] '마농의 샘(1986)'과 물의 의의

기사승인 2019-11-21 13:23:36

영화 '마농의 샘(1986)'은 프랑스에서 유명한 희곡작가이자 영화감독인 마르셀 파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1920년대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한 농가의 샘(泉)을 둘러싸고 3대에 걸쳐 벌어지는 인간의 탐욕과 복수를 담아냈다.

인간의 탐욕이 초래하는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3시간 39분 동안 베르디의 ‘운명의 힘’이라는 주제곡을 배경으로 애증의 역사가 펼쳐진다. 프랑스 영화 100년사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프랑스 영화계의 거성 이브 몽탕의 유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 2부를 합쳐, '마농의 샘'이란 이름으로 개봉됨으로써, 1부의 상당 부분이 짤려 나간 채 개봉되었다. 그러나 비디오로는 1, 2부 나누어져 출시되었다.

1부(Jean De Florette, 플로레뜨의 아들 쟝). 도시에서 세금징수원을 하던 꼽추 장(제라르 드파르듀)은 아내와 딸과 함께 상속받은 프로방스 시골 땅으로 이주한다. 그 곳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이 있었는데, 세자르(이브 몽탕)와 그의 조카 위골랭(다니엘 오테이유)은 장을 몰아내고 샘을 차지하려 한다. 그들은 카네이션 농장을 세우려고 샘물을 몰래 막아버린다. 가뭄이 들자 장은 노새를 끌고 힘들여 물을 길어오는 일을 반복한다. 가뭄이 계속되자 장은 위골랭에게 땅을 저당 잡히고 폭약을 산다. 바위를 폭파하기만 하면 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었으나, 물이 나오기는커녕 바위에 머리를 맞아 죽는다. 쓰러진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마농은 절규한다.

2부(Manon Des Sources, 샘의 마농). 양치기 처녀로 성장한 마농(엠마누엘 베아르)의 증오는 더욱 깊어진다. 아버지의 우물을 막음으로써,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자르와 위골랭, 그리고 방관자였던 마을 사람들까지 공범으로 생각하여 복수를 한다. 영화는 세자르가 자신에 의해 죽은 장이 자신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살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영화에서의 비극의 씨앗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할 인류의 자연자원인 ‘물’을 둘러싼 탐욕 때문이다. 물은 삶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며, 풍요로운 생활의 상징이기도 하다. 탈레스의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는 표현과도 같이,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의 몸은 약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몸에서 수분이 20%만 빠져나가도 목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의 양수에서 자라나 지하수가 흐르는 땅에 묻힌다. 따라서 물에서 태어나 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이다.

우리 조상들은 ‘물을 아껴 쓰면 조왕신(부엌을 다스리는 신)이 복을 내린다’고 하여 한 방울의 물이라도 소중히 여겨왔으며, ‘물에 오줌 누면 고추 붓고 애 못 낳는다’, ‘기저귀는 냇물에 못 빤다’는 등 수질 보호에 대한 인식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다성(茶聖)이라 일컬어지는 초의선사는 좋은 물이란, ‘가벼워야 한다, 맑아야 한다, 차야 한다, 부드러워야 한다, 아름다워야 한다, 냄새가 없어야 한다, 비위에 맞아야 한다, 마시고 나서 탈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좋은 물은 건강과 생명의 원천이 되므로, 새삼 맑은 물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고기가 썩는 것은 고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물이 나쁘기 때문’인 것처럼, ‘좋은 물의 적절한 공급’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아울러 물은 배를 띄워 목적지에 도착하게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따라서 물은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생명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정동운(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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