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학·전자산업 이끈 LG 구자경 명예회장 빗속 발인

한국 화학·전자산업 이끈 LG 구자경 명예회장 빗속 발인

화장 후 영면…4일장 외부 조문객 200명 안 넘어

기사승인 2019-12-17 10:14:34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발인이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간소하게 엄수됐다.

지난 14일 숙환으로 별세한 구 명예회장의 장례는 허례를 삼가고 간소하게 진행하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 형태로

고 간소한 삶을 산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 형태의 비공개 4일장으로 치러졌다. 유족은 외부 조문과 조화를 사양했다. 이에 외부에서 온 조문객은 범LG가 혹은 친인척과 고인과 인연이 있는 주요 인사에 한했다. 이에 따라 외부 조문객은 200명이 넘지 않았다.

상주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손자인 구광모 LG 대표 등 장례기간 빈소를 지킨 소수 직계 가족과 친척들, 구자열 LS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 등 범LG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빈소 안에서 오전 8시 고인에 대한 마지막 추모 시간을 가졌다.

이날 구 명예회장과 인연이 깊은 이문호 LG공익재단 이사장(전 연암대 총장)이 추도사를 전했다. 이 이사장은 추도사를 통해 “LG의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은 바로 회장님의 경영사상”이라며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큰 별이었다. LG 회장으로 계실 때에는 공장과 연구 현장에 가시기를 즐기시고 현장의 사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말씀하시며 너털웃음을 나누시던 큰 형님 같은 경영인이셨다.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분”이라고 추모했다.

운구 차량은 고인의 발자취를 되짚는 주요 장소에 들르지 않고 장례식장에서 곧바로 장지로 이동했다.

구 명예회장은 화장 후 안치되며, 장지 역시 비공개다.

한편 숙환으로 소천한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이던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하며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은퇴한 ‘참 경영인’이다.

LG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45세가 되던 1970년 1월 9일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간 생산현장을 지키다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 지 불과 1년 수 개월 만에 부친의 유고로 마음의 준비 없이 회장 자리에 오른 구 명예회장은 이후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과 21세기 선진 기업 경영을 위한 혁신의 시대를 펼쳤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으로 화학과 전자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수많은 국내 최초 기술과 제품을 개발해 LG의 도약과 우리나라의 산업 고도화를 이끌었다.

또 그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경영 혁신을 추진해 자율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한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은 매출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고,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고,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열정으로 충만한 여생을 보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자로의 업적은 물론 은퇴 후의 삶까지 재계의 귀감으로 존경을 받아 왔다.

슬하에 장남 故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두었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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