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선 한 여성이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빨간 원피스를 몸에 대본다. 이 장면을 전송받은 인공지능 디바이스가 원피스 색에 맞춘 1회분 립스틱을 즉석에서 만든다. 맘에 드는 색을 조합하거나, SNS 등에서 유행하는 색깔을 따올 수도 있다. 스킨케어 제품이나 파운데이션도 그날의 피부상태나 피부결, 피부색에 따라 맞춤으로 만들어낸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로레알이 최근 가전제품 박람회 CES2020에서 공개한 인공지능 기반 맞춤형 화장품 디바이스인 페르소(Perso) 얘기다.
화장품업계에 ‘맞춤형’ 바람이 분다. 소비자의 개성과 특성, 욕구를 반영한 개인 커스터마이징 화장품이 트렌드로 떠오른 가운데 최신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도 가세했다. 이른바 찰떡템 또는 정착템(잘 어울리는 화장품을 일컫는 신조어)을 찾아다니던 화장품 유목민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세계는 맞춤형 화장품 열풍
개인 맞춤형 화장품은 ‘미래 뷰티 트렌드’로 꾸준히 지목돼왔다. 국내에서도 10여년 전 한 바이오업체가 개인 자가지방줄기세포로 만든 맞춤형 화장품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고가의 비용이나 생소함 등 한계로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즘 화장품 업계에서는 ‘맞춤형 화장품’ 도입이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맞춤형 화장품’에 주목한다. 지난해 밀라노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뷰티 박람회인 볼로냐 코스모프로프에서도 ‘맞춤형 화장품’을 2020년 화장품 트렌드로 지목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2019 볼로냐 코스모프로프 전시 담당자는 화장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제품과 서비스가 세분화되고, 그 일환으로 개인 맞춤형 또는 부위별 맞춤형 화장품이 트렌드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로레알이 선보인 페르소는 이런 맞춤형 화장품과 최신 기술의 조합이다. 개인 피부 분석부터 날씨나 온도 등 환경평가, 제품 선호도를 반영한 화장품 조제 기술까지 하나의 기기에 집약했다. 사용자가 휴대폰 앱을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기기에 장착된 스킨케어, 파운데이션, 립제품 카트리지를 기반으로 알맞은 비율의 1회분의 맞춤형 화장품을 즉석에서 만들어 낸다. 귀브 발루치(Guive Balooch) 로레알 그룹 테크놀러지 인큐베이터 글로벌 부사장은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로으로 한 페르소는 사용할수록 포뮬라를 업데이트해 최적화된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로레알은 오는 2021년 페르소를 정식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장품도 ‘정기구독’ 뜬다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불하면 그에 상응하는 물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독 경제가 식재료, 자동차, 도서 등에 이어 화장품 분야에도 고개를 내민다. 개별 소비자의 피부 특성이나 생체리듬에 맞춘 제품을 정기 제공하는가 하면, 탈모 관리 의지를 북돋워주는 전략으로도 쓰인다.
구독형 화장품 분야에는 화장품 스타트업 ‘톤28’이 시행하는 28일 주기 화장품 구독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톤28은 개인의 피부데이터와 28일마다 달라지는 생체주기, 기후 변화를 반영한 추천성분을 배합한 ‘맞춤형 바를거리’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질 것이 예상될 경우 제품에 ‘안티-폴루션(Anti-pollution) 기능의 식물복합성분을 추가하는 식이다.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톤28에 따르면, 2017년 시작한 이 서비스의 구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여 명, 평균 구독 기간은 11.7개월가량으로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두피 탈모케어 브랜드 자올 닥터스오더도 지난해 8월 정기구독 서비스인 ‘먼슬리 자올’을 론칭했다. 탈모관리에 있어 필수요소가 ‘꾸준한 관리’라는 점에 착안해 6개월을 기본 구성으로 탈모관리를 위한 제품을 제공하고, 1:1코칭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탈모관리에 대한 의지를 북돋겠다는 전략이다. 자올 닥터스오더 민경선 대표는 “꾸준히 6개월 이상 탈모관리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상태 유지는 물론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궁극적인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꾸준한 탈모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먼슬리자올’을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H&B스토어도 맞춤형 대응 속속
개인 피부타입 등에 따른 화장품 선택이 보편적인 구매성향으로 자리잡으면서 H&B스토어들도 개인 맞춤형 응대에 나선다. 지난해 한국에 상륙한 세포라는 ‘뷰티 체험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에게 15분간 무료로 제공하는 메이크 오버 서비스, 피부 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스킨케어 제품을 추천해주는 피부상태측정서비스 '스킨크레더블', 그리고 전문적인 헤어 스타일링 전문 직원이 1:1맞춤형 컨설팅 및 스타일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이슨 헤어 스타일링 바' 등 맞춤형 서비스로 매장을 채운 셈이다.
CJ올리브영도 올해부터 전국 매장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고, 디지털 솔루션 기반의 맞춤형 카운셀링을 본격화한다. 고객의 성별과 나이, 피부 고민과 관련한 12개 문항을 통해 피부 타입과 수분 지수, 주름 탄력, 민감도 등부 진단 결과를 바로 확인하고, 결과에 따른 맞춤 화장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원하는 고객에게는 진단결과도 제공할 계획이다.
◇ 맞춤형 화장품 열풍...한국은 지금
‘맞춤형 화장품’ 확산에 정부도 빠르게 발맞추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K-뷰티’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세계 최초 맞춤형 화장품 제도를 마련했다. 올해 3월부터는 개인 취향에 맞춰 화장품을 덜어 팔거나 섞어 파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유전체 분석 결과를 활용한 화장품과 국가 및 지역별 선호도를 고려한 수출국 맞춤형 소재 개발도 박차를 가한다. 정부는 화장품 산업 지원 및 개발에 올해 예산 77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대규모 R&D 재정투자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이를 통해 국내 화장품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일자리 창출 등 부수효과를 꾀한다는 것이다. 2022년 세계 3대 화장품 수출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다.
이같은 맞춤형 화장품 열기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점점 깐깐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다만 피할 수 없는 변화인만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본인의 피부타입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화장품'에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며 "전 산업계에 걸쳐 커스터마이징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맞춤형 화장품이 포화 상태인 화장품 시장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