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한 번에 10만원 지출” 지방 취준생…심리적 위축·기회도 부족해

“면접 한 번에 10만원 지출” 지방 취준생…심리적 위축·기회도 부족해

기사승인 2020-01-20 04:00:00

# 경북 경산시에 거주하는 신모(27·여)씨는 서울시 소재 회사의 인턴모집에 지원했다. 신씨는 오전 8시 경산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면접을 마친 뒤에는 시외버스 출발 시간인 오후 5시까지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경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3시간 가량 걸려 도착한 신씨는 녹초가 됐다. 이날 신 씨의 지출은 열차표 4만5000원, 시외버스표에 3만원 등 왕복 교통비만 7만5000원이었다. 신씨는 “내가 지출한 편도 교통비보다 적은 돈으로 면접을 보러 올 수 있는 수도권 거주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취업난은 모든 청년들에게 똑같이 혹독할까. 취업 시장에서 비수도권 청년들에게는 거주지로 인해 극복해야 할 약점이 여럿 따라붙는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들과 비교해 비수도권 취준생은 구직 과정에 소모되는 지출이 많다. 면접에 응시하기 위해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교통비부터 부담이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려면 하루가 꼬박 소요된다. 울산시 남구에 거주하는 이모(26·여)씨는 서울 소재 한 언론사 동계 인턴모집 필기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오전 7시에 KTX 열차를 탔다. 2시에 시험이 종료됐고,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4시까지 대기했다. 이씨는 저녁 9시가 돼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비수도권 취준생들은 구직활동을 하며 숙박비를 지출하기도 한다. 수도권에서 이른 오전에 시험이나 면접이 진행되는 경우, 이동 거리가 먼 취준생들은 전날 미리 상경해 하룻밤을 지낸다. 15일 기준 서울시에서 가장 저렴한 1박 숙박비는 기숙사형 게스트하우스 1만7000원, 호스텔 2만4000원이었다.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한 전략도 다양하다. 경북 대구시에서 서울의 한 기업 면접을 보기 위해 상경한 박모(28)씨는 24시간 스터디 카페에서 1박을 했다. 박씨는 면접 전날 밤 카페에 도착해 6시간을 머물렀고, 이용료 6000원을 냈다. 찜질방도 대표적인 숙박비 절약 대안이다. 인터넷 취업정보 카페 ‘독취사’와 ‘스펙업’에는 비수도권 취준생들이 서울시 내 면접 장소 주변 찜질방 위치를 공유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이 같은 조건에서 비수도권 취준생은 거주지 때문에 심리적인 위축을 경험한다. 전남 광주시에 거주하는 양모(26·여)씨는 “서울에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마다 ‘어떻게 다닐 거냐, 결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참여 의지를 항상 의심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터디 그룹, 학원, 채용설명회도 서울과 수도권에 모여있어, 지방에서 취업을 준비하면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거주지를 이유로 채용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채용정보포털 커리어의 지난 201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 496명 중 85.5%가 지원자의 통근 거리를 유심히 본다고 답했다.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 합격에 유리하다고 답한 비율은 72.8%로 나타났다. 통근 거리 때문에 지원자를 탈락시킨 경험이 있는 인사담당자도 52.6% 있었다. 

비수도권 취준생들이 이 같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수도권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자리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기업 중 절반에 가까운 47.3%는 수도권에 위치했다. 구체적으로 경기 21.4%, 서울 21.1%, 인천 4.8% 순으로 지역 내 많은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는 일자리의 질적 격차도 있다.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이 소득·학력·숙련도를 기준으로 전국 252개 시군구의 ‘일자리 질 지수’를 산출한 결과, 상위 39개 지역 가운데 32곳이 서울·경기·인천이었다. 상위 3곳은 서울 서초구·경기 성남시 분당구·서울 강남구, 하위 3곳은 경북 의성군·전북 진안군·경북 영양군 순이다.

구직활동을 위한 인프라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지난해 채용정보포털 잡코리아가 비수도권 취준생 5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명 중 1명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취업·채용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들 취준생이 가장 부족하다고 꼽은 인프라는 ‘취업·채용 관련 박람회’와 ‘대외활동 및 인턴 기회’ 등이었다. 채용정보포털 사람인의 채용설명회 일정 목록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채용설명·상담회 총 120건 가운데 29건을 비수도권에서 진행했다. LG그룹 계열사는 19건 중 5건, 롯데그룹은 11건 중 3건의 채용설명·상담회를 비수도권에서 열었다.

임도빈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역 간 격차가 기업과 청년들의 수도권행(行)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 기업들은 구인난에서 벗어나고 생산비용도 줄이기 위해 인구·기업이 밀집한 수도권으로 이전한다”며 “청년들도 일자리를 따라 수도권으로 가면, 지방 기업의 구인난은 더 심화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기업이 수도권 밖에서도 충원과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면서도 “이 같은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는 비수도권 취준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등 국가에서는 화상 면접이 보편적으로 활용된다”며 “시험도 인터넷으로 응시할 수 있도록 시험 전 본인 인증 절차에 지문과 동공 등 생체정보 인식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 그래픽=윤기만 에디터 adree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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