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탈원화와 조현병 장기지속형 주사제

[진료실에서] 탈원화와 조현병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사승인 2020-01-30 04:00:00

글= 부산동래 나눔과행복병원 서영수 병원장

‘탈원화’와 ‘장기지속형 주사제’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 들 수 있겠으나, 지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조현병’에 관한 이야기다. 

조현병은 지리, 문화적 차이와 관계없이 전 세계적으로 인구 1% 정도에서 발병하는 비교적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질환이다. 때문에 누가 이 병을 만나게 되더라도 사회구성원으로써 어울려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면, 조현병 환자의 회복을 위한 다양한 메뉴의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약물치료는 조현병 환자의 회복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며, 약물치료의 큰 어려움으로 뽑혔던 약물순응도를 개선한 ‘장기지속형 주사제’(Long-Acting Injection, LAI)는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장 희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신보건 분야의 전 세계적인 트렌드는 ‘탈원화’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탈시설화’인데, 이는 단지 환자가 물리적으로 병원에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장기수용 상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인권적이고 수준 높은 치료를 받으며 더불어 살아가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오늘날 조현병 치료의 패러다임은 환청, 망상과 같은 증상을 호전을 목표로 삼는 ‘의료모델’로부터 기술 습득과 역량 강화를 주요 목표로 삼는 ‘재활모델’을 뛰어넘어, 사회속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회복’을 지향하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일부 증상 및 기능의 개선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으로서의 전인적인 회복을 중요시하게 된 점에서 매우 큰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하겠다. 다만, 그것이 곧 증상 호전을 위한 ‘의학적 치료’나 기술습득과 사회력 향상을 위한 ‘정신재활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폄훼하거나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조현병 환자의 회복을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환자의 안정적인 상태와 이를 위한 꾸준한 약물치료가 필수적이다. 허나 조현병 환자의 경우 ‘약물 비순응(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는 것)’이 다른 질환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히 ‘결정적 시기’라고 불리는 발병 후 5년 이내 약물치료를 중단하였을 경우 80% 이상이 재발하며, 재발을 거듭할수록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치료 저항성’ 유발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재발 후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은 비재발군의 약 7배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부담 없이 한 달에 한 번 또는 세 달에 한 번 투여로 혈중 약물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사용은 약물비순응 문제를 예방함으로써 재발 위험을 의미 있게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약물 순응도를 크게 개선한 사례는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피해망상으로 가출을 반복한 한 환자는 입원치료 후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했지만 번번이 약복용을 중단하며 10여 차례의 입퇴원을 반복해 왔다. 그러던 중 2012년도에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처음 사용하며, 현재까지 단 한 번의 재발이나 입원 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스스로 외래통원치료를 유지 중이다. 

대학 초기 조현병이 발병, 주변 동기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편집사고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낮은 학업 성취도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환자도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사용하며 편집사고가 경감이 되고 학업성취도 또한 개선되어 올해 대학을 졸업하게 됐다.

다양한 치료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중요한 점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치료받고자 애쓰고 노력할수록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더 많은 따뜻한 지원과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2019년 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조현병 관련 사건사고들은 안타깝게도 조현병을 단지 ‘위험한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만든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예전과 달리 선정적인 단발적 보도에 그치지 않고, 문제의 본질과 대안에 접근하고자 하는 일부 매스컴들의 노력과 국민적 관심에 힘입어 국가적 책임 문제로 인식하게 되는 의미 있는 진전 또한 있었다.

당장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끊임없는 부단한 노력을 이어간다면 좋은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현실로 만든 소중한 경험들이 널리 공유되고 확산되는 새해가 되길 기대해본다.

조민규 기자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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