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1년…서귀포의 소정방폭포와 정방폭포 둘러보기

제주도에서 1년…서귀포의 소정방폭포와 정방폭포 둘러보기

58년 개띠 퇴직자의 제주도 1년 살기…서른세 번째

기사승인 2020-02-29 00:00:00

2월 중순이 지나면서 걷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 바람이 확연히 잦아들었고 기온도 적당히 올라 서늘한 느낌으로 걷기 시작해 몸이 풀리면 상쾌함이 오래 지속된다. 얇은 셔츠를 세 겹으로 입고 걷다가 땀이 나기 시작하면 하나를 벗는 정도로 체온 유지가 쉬워졌다.

걷는 거리가 어느새 400km를 훌쩍 넘고부터는 다리에 힘이 꽤 붙었음을 느낀다. 지난해 여름 처음 걸었던 올레 5 코스가 15km 정도였는데 8 시간 만에 마무리 했다. 여름이라 덥기도 했고, 1.5kg의 카메라를 들고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찍다보니 많이 지체되었다. 무엇보다 체력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거의 탈진 상태였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리 근육통이 며칠간 계속되었다. 지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0~15km 걷고 하루 쉰 뒤 다시 걸어도 크게 피로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제 걷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우한코로나 폐렴으로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식당 출입이 조심스럽고, 올레 코스 시작 지점을 찾아갈 때 택시나 버스를 타게 되면 반드시 마스크를 쓴다. 확진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제주도에서도 2명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에 손소독제까지 가지고 다닌다. 그래도 걷기가 즐겁다. 멋진 풍경과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즐긴다. 사십대 중반엔 마라톤을 즐기며 체력을 얻었고 이젠 걸으며 체력을 키운다.

토요일에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해서는 주말에 집에서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냈다. 월요일 오전 병원에서 사직서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은근히 화가 났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2년을 근무한 직원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유도 전혀 알려주지 않고 느닷없이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적어도 형식과 절차는 있을 줄 알았다.

한 달이 정신없이 지났다. 7월 초에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아이들 엄마가 2년간 미국으로 장기 연수를 가며 아이들도 함께 가기로 해 준비할 사항들이 많았다. 예방접종과 치과 진료 마무리하고 옷과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마련했다. 살던 집은 팔고 혼자 기거할 원룸을 구했다. 사직 문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폭우가 퍼붓던 날 아이들이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돌아와 좁은 방에 앉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혼자 남은 듯했다. 며칠을 멍하니 보냈다. 조용한 것이 싫어 TV는 켜 두었다. 지난 12년 정신없이 살았는데 직장에선 그만두라 하고 아이들은 떠났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필요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며 잠드는 날이 이어졌다.

사직 문제는 이사장 면담 후 6개월의 무급 유예기간 후에 처리하기로 했다. 약간의 퇴직 위로금이 있었고 향후 5년간 부모님의 질병 치료는 재직 시와 동일한 조건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달 후 큰 규모의 구조조정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느닷없이 사직해야 했던 까닭을 알았다. 태어나 몇 달 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 백낙환 이사장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다만 그의 큰아버지인 백인제 박사가 남긴 백병원에 대한 책임이 막중해 넘치는 정을 누르고 감추며 살았다. 내게도 그랬지만 마지막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제주는 물이 귀한 곳이다. 그러나 한라산 정상을 기점으로 바닷가까지의 거리가 가장 짧은 서귀포에서 중문까지는 늘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고 그 끝에는 사철 물이 떨어지는 폭포가 있다. 소정방폭포,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천제연폭포 그리고 엉또폭포가 모두 이 지역에 몰려 있다.

소정방폭포
소정방폭포 (서귀포시 칠십리로214번길/동홍동)는 정방폭포에서 동쪽으로 약 500여 미터 떨어진 바닷가에 있다. 정방폭포처럼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지만 폭포수의 높이는 최고 7 미터에 불과하고 물줄기도 그다지 크지는 않아 정방폭포를 축소한 모양이라는 의미에서 소정방폭포라 불린다. 찾아가기에 많은 수고는 필요 없지만 막상 마주하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주민들에게는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었다. 소정방폭포는 수원이 용천수여서 물이 매우 차다. 이 때문에 여름날 물맞이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백중날(음력 7월 14일) 이곳에서 물맞이를 하면 각종 질병에 좋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는다. 폭포 동쪽으로 [파라다이스호텔 제주]와 [서귀포칼호텔]이 있고 서쪽으로 [왈종미술관]과 [소라의성]이 있다. 제주 올레6코스가 지난다.

정방폭포
정방폭포 (서귀포시 부두로5번길 9)는 늘 씩씩하고 힘이 넘친다. 폭포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다. 1995년 8월 26일 제주기념물 제44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8월 8일 명승 제43호로 변경되었다. 폭포 높이 23m, 너비 10m 정도 되고 보호면적은 10,529㎡이다. 폭포 양쪽에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이 발달하였고 노송이 우거져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진시황의 명을 받은 서복 (서불)이 불로초를 얻기 위해 영주산(한라산)에 산다는 신선을 찾아 이곳에 왔다가 정방폭포의 폭포를 가진 경치에 반해 절벽에 '서불이 왔다 간다‘는 뜻의 글자를 새겨놓고 돌아갔다 한다. 그런 연유로 ’서불이 돌아간 포구‘의 의미를 가진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에 기초해 정방폭포 주차장 서쪽에 40여억 원을 들여 중국풍의 공원을 조성했다. 중국인들의 발길을 잡아보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도 이 공원을 돌아볼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가기만 한다.

사람들이 아무 관심 없이 지나가는 기념물이 정방폭포 주차장 동쪽에 하나 더 있다.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이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나 주차장 쪽에서 담장처럼 나무가 자라 올라 이곳을 병풍처럼 기리고 있다. 이제는 남영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고 사람들의 관심에서도 사라졌다. 그 결과 44년 후 판박이처럼 똑같은 사고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났다.

남영호 침몰 사고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 사고 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사고다. 1970년 12월 15일 서귀포항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정기여객선 남영호가 침몰해 선원과 승객 331명 중 12명만 구조되고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남영호는 정원이 290명이었지만 승객 311명과 선원 20명 등 331명을 태워 정원보다 41명이나 초과해 승선한 상태였고 화물 400톤 이상을 무리하게 싣고 있었다. 남영호 사고와 세월호 사고는 그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참으로 많이 닮았다. 다만 이런 비극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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