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창궐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미주, 중동, 아프리카 대륙 등 전 세계로 확산됐다. 유래 없는 감염병의 대유행은 특히 취약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2회에 걸쳐 코로나19가 초래한 팔레스타인인과 로힝야의 인도주의 재앙을 보도한다.
[쿠키뉴스] 김양균 기자 = 중동 지역에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무섭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8일 0시 기준 이란 6만2589명(사망 3872명)을 필두로 중동 17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다. 특히 눈여겨볼 곳은 바로 팔레스타인이다. 이곳의 누적 확진자 수(254명·사망 1명)만 볼 때는 ‘비교적’ 양호한 상황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따져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 팔레스타인 대표사무소의 집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있는 서안지구(West Bank)의 경우, 2015년 기준 5655㎢ 면적에 289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하마스의 영향력 아래 있는 가자지구(Gaza Strip)는 불과 365㎢ 면적에 186만 명이 살고 있어 매우 높은 인구 밀집도를 나타낸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모두 합친 면적은 6020㎢로 우리나라의 1/33에 불과하다.
서안지구의 베들레헴에 집중됐던 환자 발생은 현재 라말라, 툴카렘, 헤브론 등 서안지구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도 십여 건의 확진자가 보고됐지만, 코로나19 진단검사 능력을 고려하면 실제 확진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11일 자치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서안지구내 의료기관·약국·식료품점 등을 제외한 학교와 종교시설, 관공서, 일반 상점의 문을 닫고 시민들의 통행을 금지하는 봉쇄조치를 내렸다. 서안지구 전역에서 감염자가 발생함에 따라 봉쇄조치는 다음 달 초까지 연장됐다.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가자지구와 함께 주거 및 이동의 자유를 침해받아 사실상 봉쇄 상태에 놓여 있는 서안지구의 잠재적 위험성은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높은 인구 밀집도와 피지배국으로써 봉쇄된 상태, 2018년 기준 1인당 GDP가 2957불로 국민의 절반가량이 극빈층이란 점은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최악의 경우 팔레스타인내 폭발적 코로나19 유행은 대규모 사상자를 발생시킬 수 있다.
관련해 이종구 서울의대 교수의 ‘해외의 방역체계 사례’는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물자와 의료인력 부족으로 민간치료나 개인부담이 높은 개발도상국의 경우, 감염병 치료는 대부분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예방과 치료, 역학조사와 위기대응에 미흡하다. 치료약의 부족과 공중보건체계가 부실하다보니 감염병에 취약해 대량 환자가 발생해 국제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단법인 아디의 도움으로 칼리드 알리 나세프 라말라인권연구회 사무총장을 통해 현지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아디 이동화 팀장은 “팔레스타인은 의료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특히 가자지구는 최악의 인구밀도와 2007년 이후 이스라엘 봉쇄조치로 코로나19가 확산될 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방역체계 미비… 코로나19 전파차단 민간서 자구책 찾아
의료기관이 있는 라말라 등 대도시에서는 거점병원을 지정해 확진자 치료가 이뤄지는 반면, 병·의원 등이 미비한 지역의 경우에는 호텔 등지에서 확진자의 치료 및 관리가 이뤄지는 형편이다. 칼리드 알리 나세프 라말라인권연구회 사무총장은 현지 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팔레스타인의 방역망은 취약하다. 내부의 불안과 함게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지역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외부에 기댈 수 밖에 없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사태 초기 긴급구호물품 반입을 제한했고, 적극적 방역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비록 WHO가 공식 집계한 누적 확진자수는 250여명이지만, 칼리드 사무총장은 진단검사 접근도 등을 고려하면 실제 확진자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얼마나 확산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과 우려가 높다”고 전했다.
서안지구의 마스크 수급 현황도 원활치 않다. 칼리드 사무총장에 따르면, 의료진에 대한 보건용 마스크 보급은 WHO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 관련해 코로나19 발생 초기 이스라엘 정부는 일주일 동안 소독용 알코올의 가자와 서안으로의 반입을 불허했었다. 칼리드 사무총장은 이를 “의도적 반입 혹은 지연”으로 규정한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심각하지만 이스라엘 정부는 이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 소속 활동가들이 전한 소식도 그리 밝지 않다. 내달 초까지 봉쇄조치가 연장되면서 팔레스타인인의 빈곤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설상가상 유대정착촌 등지에서 일을 하던 팔레스타인 노동자 4만5000여명이 복귀하면서 확산세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자치정부 차원의 대책이 미비하다보니 현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식량과 물품 등을 나누는 등 자구책을 펴고 있는 상황. 이동화 팀장은 “팔레스타인의 코로나 19 확산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마스크 착용,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민간 차원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부족한 자원과 시설, 이스라엘의 비협조와 봉쇄정책은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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