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강간·폭행·음주운전을 저질러도 의사면허를 따는데 문제가 없는 현 의사면허 국가시험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강간, 폭행, 음주운전 의대생은 의사가 되면 안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2만5000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청원 내용을 종합하면 국내 모의과대학 재학생 A씨(24)는 지난 2018년 9월3일 새벽 2시께 전북 전주시의 한 원룸에서 당시 여자친구 B씨(22)를 때린 뒤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에도 A씨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작년 5월11일 음주 상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신호대기 중이던 차를 들이받아 상대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상처를 입혀 또다시 기소된 것.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68%로 면허 정지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장애인복지시설에 각 3년간 취업제한을 선고했다.
청원인은 “(A씨가)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이 의사가 되어 환자를 본다고 생각하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신체적, 정신적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에 대해 가벼운 처벌이 이어지면서 판결이 성범죄자를 키워낸다는 말이 나온다”며 “피해자가 합의했다고 하지만 법의 일은 거기서 끝난 것이고 이제 윤리가 등판해야 할 때로, 의학적 지식만 갖췄다고 의사 면허라는 독점적 권리를 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의사 면허는 심지어 살인하더라도 영구박탈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범죄자는 아예 의사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학교에서는 A씨를 출교 조치하고 혹시 졸업한다 하더라도 보건복지부에서 의사국가고시 응시를 못 하게 하거나 면허부여를 하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의사면허의 취득이나 유지가 지나치게 너그럽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범죄를 저질러도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고로 의료법 8조에 있는 의사국가고시 결격사유에는 ▲정신질환자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피성년후견인·피한정후견인 ▲의료 관련 법률 위반자로 제한한다. 의사국가고시를 주관하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신원조회 과정을 거치긴 하지만, 의료법 상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법에 명시된 제한기준만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장애인은 의사가 될 수 없어도 성범죄자는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있도록 한 기막힌 실태다.
관련해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선진국은 의사 시험이 면허를 받을 충족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의사 면허 관리기구에서 의대생 때부터 준 전문직으로 관리한다. 범죄를 저지른다면 ‘정밀 관측’ 등의 단서조항을 붙여 면허를 발급하거나 면허를 정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직무 윤리에 근거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시험을 못 보게 할 규제조치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 의사국가고시를 못 보게 한다면 A씨가 소송할 것이고, 법의 판단에 따라 A씨가 이기게 될 것이다. 어느 직종이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발생한다. 이러한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면허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면허가 발급된 이후에는 범죄에 연루된다 하더라도 대부분 의사 면허를 재교부 받는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사 면허 재교부 신청 및 신청결과’에 따르면 2015년부터 현재까지 면허 재교부 신청은 총 55건으로 심사 중인 1건을 제외하고 53건이 승인돼 승인율이 98%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기동민 의원은 “면허 재교부 여부를 결정할 때 심의위원회 등을 거치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일반 형사범죄나 특별법 위반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사 처분을 받더라도 면허에 영향을 주지 않아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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