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식음에 아쉬움 남은 신춘음악회 ‘PEACE(평화)’

화려한 장식음에 아쉬움 남은 신춘음악회 ‘PEACE(평화)’

기사승인 2020-05-28 17:50:58

[쿠키뉴스] 엄지영 기자 =‘PEACE(평화)’는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 추념공연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로 객석은 비록 허전했지만, 90분 동안 이어진 ‘PEACE’의 무대는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서양 음률에 우리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27일 코로나19로 공연을 미룬 지 두 달여 만에 소리문화전당서 신춘음악회 ‘PEACE’ 공연을 펼쳤다. 이번 공연은 지난 3월 25일 안중근 의사 순국일 전날 공연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개최되지 못했다. 도립국악원은 의미 있는 공연이기에 진행키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PEACE’는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과 어록을 노랫말로 엮어 관현악, 협주곡, 판소리 독창과 합창 등 음악극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번 공연은 ‘영원’, ‘조마리아의 편지’, ‘혼무’, ‘꼬레아 우라’, ‘영원한 왕국’ 등 총 다섯 개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중 ‘영원’과 ‘조마리아의 편지’, ‘꼬레아 우라’가 이번 공연을 위한 초연곡이다.

무대가 열리자 건곤감리, 하늘과 땅의 장중한 기운이 감돈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된 손과 어록이 적힌 현수막 등 분위기를 이끄는 무대와 조명은 공연 내용을 전달하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국악관현악을 이끄는 지휘자의 에너지와 단원들의 화합은 열광적인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지극히 절제된 소리로 장중하게 막을 연 첫 번째 무대는 대금 협주곡인 ‘영원(Eternity)’이다. ‘영원’은 한국 전통음악의 백미인 수제천을 화려한 장식음과 리드미컬한 패턴으로 재해석했다. 변형된 가락과 변주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했고, 대금연주자의 드레스 역시 전통곡이 아닌 개작이란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두 번째 무대 ‘조마리아의 편지’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번 무대는 자식의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어머니의 애끓는 사랑을 소리에 담아내고 있다. 대의를 위한 어머니의 결단은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힘이다. 조마리아 여사는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면서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듯 세 번째 무대는 동해안별신굿을 바탕으로 한 ‘혼무’로 이어진다. 해금 협주곡 ‘혼무’는 8개의 짧은 악장으로 구성된 협주곡으로 개인의 안녕이 아닌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한다. 해금 솔로는 별신굿의 영매이고 관현악은 굿을 관람하는 사람들이다. 해금과 관현악이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며 감정을 소통한다.

네 번째 무대는 다시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지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코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번 무대는 안중근 의사가 국권회복에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하고 지은 시 ‘장부가’와 ‘동양평화론’ 등을 남창과 판소리 합창, 국악관현악으로 연주한다. 남창은 안중근 의사의 굳은 의지를 표현하고 판소리 합창은 백성들의 소리를 나타낸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서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미는 ‘영원한 왕국’이다. 이 작품은 평안남도에 위치한 강서대묘의 벽화 사신도를 음악적 소재로 작곡한 작품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수호하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그림이다. 이 곡은 사신도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자존의식과 천하 중심의 민족적 기상을 표현하고 있다.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던 공연이 환호 속에 막을 내렸다. ‘PEACE’는 안중근 의사와 조마리아 여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이란 소재를 재현했다. 전북을 대표하는 관현악과 창극단 단원들은 화려한 선율로 재해석한 곡들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하지만 외국인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영원’과 ‘혼무’의 경우 공연 내내 과연 이 곡들이 우리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원’은 궁중음악, ‘혼무’는 무속음악을 표현하고 있어 서로 음악적 성격이 다르지만 이 두 곡은 같은 선율과 감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음과 박자는 서양의 음계와 다르다. 서양음악은 장조와 단조의 7음계가 사용되지만 한국음악은 12음계이다. 이러한 한국음악은 소리를 밀어 올리고 끌어 내리는 등 서양음악과 차별화된 곡선 음이며, 박자조차 연주자의 호흡으로 길이를 정한다. 또한 서양음악은 화려한 구성의 여러 성부들이 어우러져 있다면 우리음악은 하나의 선율인 단선율로 구성된다.

수제천은 한 박의 길이가 불규칙한데다 길이가 같아 서양음악 입장에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제천의 가락을 변형한 ‘영원’ 역시 얼마나 우리 음악을 이해하고 반영했을지 의문이다.

물론 우리 것을 세계화하기 위해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변화시키고 접목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것을 지키고 이어가면서 세계화하는 것과 서양음악에 우리 것을 꿰맞추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아무리 뛰어난 외국인 작곡가를 섭외했다고 하지만 우리 정서까지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제 선정도 어색하다. 도립국악원은 지난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어머니는 기다린다’에 이어 올해 안중근 의사 110주기를 맞아 ‘PEACE’를 준비했다. ‘PEACE’는 안중근 의사를 추념키 위한 공연이지만 연관된 곡은 ‘조마리아의 편지’, ‘꼬레아 우라’ 두 곡뿐이다. 나머지 곡들은 안중근 의사와의 연관성을 ‘평화’란 비유적 표현과 ‘대한민국’에서 찾아야 했다.

이날 관람객 A씨는 “베토벤 교향곡을 가져다가 연주하는 것 같았다”면서 “우리 것을 끄집어 내지 못하고 외국 선율에 맞춰진 것 같아 다소 아쉬웠다”고 말했다.

권성택 관현악단장은 “이번 공연은 수준 높은 곡들로 선정해 기존 연주를 완전히 탈피하고 격조를 높였다”면서 “상·하반기로 나눠 진행되는 정기공연의 경우 대중적인 것보다 음악적 의미를 둘 수 있는 것들로 선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북도립국악원은 우리 것을 널리 알리고 계승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음악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 서양악보 오선지로 옮기는 일도 필요하다. 이 또한 우리 음악의 감성과 흥을 충분히 살릴 수 있어야 한다.

circle@kukinews.com

엄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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