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국내 화학업계가 기술 국산화를 통한 극일(克日)에 앞장서고 있다. 사상누각이라고 폄하 받던 극일 정책이 산업계의 노력으로 빛을 발하는 모양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의 화학소재 계열사인 SKC는 반도체 노광공정 핵심소재로 쓰이는 블랭크 마스크 하이엔드급 제품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웨이퍼에 전자회로 패턴을 새길 때 쓰이는 핵심소재다. 이중 하이엔드급 블랭크 마스크는 수입에 의존해왔다.
SKC는 충남 천안 하이엔드급 블랭크 마스크 공장에서 고객사 인증용 시제품 생산을 본격화했다고 최근 밝혔다. 약 43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4월 공장 건설에 착수한 SKC는 지난해 12월 완공하고 양산 준비를 해왔다. 고객사 인증을 거쳐 이르면 올해 상업화에 나서는 것이 목표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공장 위치는 SKC 하이테크앤마케팅 천안공장 내 여유 부지다. 회사는 이곳을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SKC 반도체 소재 클러스터로 조성하기로 했다. SKC는 천안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50%가량인 반도체 소재 국산화율을 높일 계획이다.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사용하는 포토 마스크의 원재료다. 쿼츠 위에 금속막과 감광막을 도포해 만든다.
여기에 회로 패턴을 형상화하면 포토 마스크가 된다. 필름으로 치면 촬영 전 필름이 블랭크 마스크, 촬영 후 필름이 포토 마스크다. 포토마스크를 반도체 웨이퍼 위에 놓고 빛을 쏘면 빛이 통과한 부분에 화학반응이 일어나 회로가 된다.
블랭크 마스크 시장 규모는 매해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18년 8000억원 수준이었던 세계 시장 규모는 매해 7%씩 성장해 2025년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중 95%가량을 일본의 글로벌 업체 2개사가 차지하고 있다. 특히 하이엔드급 시장은 99%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도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하이엔드급 블랭크 마스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SKC는 그동안 쌓아온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재 국산화에 기여하기 위해 사업에 진출했다.
블랭크 마스크는 금속막과 감광막을 나노미터 단위의 얇은 두께로 쿼츠에 도포해야 하며, 하이엔드급은 더 얇고 여러 번 균일하게 도포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력이 요구되는 소재다. SKC는 여기에 필요한 진공증착(sputtering) 기술과 경험이 있고, 초청정 무진 관리 경험이 있는 기업이다.
회사 관계자는 “천안에 마련한 SKC 반도체 소재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반도체 사업을 고도화하겠다”며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것”고 말했다.
친환경 에너지·소재 기업인 한화솔루션은 고부가가치 화학 소재인 자일릴렌 디이소시아네이트(XDI)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동안 일본 기업이 독점 공급하던 고기능 광학 렌즈 소재를 수년에 걸쳐 자체 기술을 개발해 상업 생산에 들어간 것이다.
한화솔루션은 전남 여수사업장에서 고순도 XDI의 상업 생산을 시작했다고 지난달 10일 밝혔다. 여수사업장의 생산 규모는 연 1200톤이다. 한화솔루션은 이에 따라 일본 미쓰이케미칼(연산 5000톤)에 이어 세계 두 번째 XDI 생산업체가 됐다.
XDI는 폴리우레탄의 주원료인 이소시아네이트 화합물의 한 종류다. 특히 순도 99.5% 이상인 고순도 XDI는 범용 이소시아네이트 대비 약 10배 이상 비싼 고부가 소재이다.
투명성과 굴절성이 우수해 기존 렌즈보다 약 30% 얇고 선명한 고급 광학 렌즈의 원료로 주로 사용된다. XDI를 활용한 고부가 제품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 광학 렌즈 생산업체들은 한화솔루션이 이번에 고순도 XDI 국산화에 성공함에 따라 안정적으로 고품질 원료 확보가 가능할 전망이다. 그동안은 미쓰이케미칼의 시장 독점으로 XDI 수급에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회사는 광학 소재 분야를 시작으로 XDI 거래처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 소재는 폴더블폰에 사용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패널용 소재인 OCA(광학용 투명 접착 필름), 고급 잉크, 도료, 친환경 식품포장용 접착제, 전자 제품 포장 필름 등으로 활용 분야가 넓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이번 XDI 상업 생산으로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고부가가치 부품 사업 확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육성 취지에 발맞춰 앞으로도 소재 국산화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표 화학섬유사 효성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글로벌 TOP3 탄소섬유 기업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효성은 오는 2028년까지 탄소섬유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해 생산규모를 연산 2만4000톤(10개 라인)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이는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대규모다.
회사는 앞서 2011년 전라북도와 전주시, 한국탄소융합기술원 등과 협업을 통해 국내기업으로는 최초로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탄소섬유인 ‘탄섬(TANSOME®)’ 개발에 성공, 2013년부터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일본과 미국, 독일에 이어 세계 4번째 개발이다.
탄소섬유는 수소차 수소연료탱크의 핵심 소재로 수소 에너지의 안전한 저장‧수송‧이용에 필요한 소재다. 수소연료탱크는 플라스틱 재질 원통형 용기로, 여기에 탄소섬유를 감아 강도와 안정성을 높인다.
특히 이 소재는 가벼우면서도 일반 공기보다 수백배의 고압에 견뎌야 하는 수소연료탱크의 핵심소재다. 2030년까지 수소연료탱크용 탄소섬유 시장은 12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효성 관계자는 “탄소섬유의 미래 가치에 주목해 독자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라며 “탄소섬유를 더욱 키워 ‘소재 강국’의 한 축을 담당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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