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일식

[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일식

기사승인 2020-06-08 10:22:12

‘범죄시계’(crime clock)란 말이 있다. 한 해의 범죄발생빈도를 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었던 때는 혼란과 분쟁의 20세기를 마감하던 1999년이었다. 그야말로 세기말답게 경찰청은 새 시대에 대한 불안 속에 사람들의 각오와 경각심을 일깨우려 그 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범죄의 빈도를 발표했다. 그리고 1999년의 범죄시계는 18초였다. 한 해 동안 171만 2233건의 범죄가 18초에 한 건씩 발생했다고 했다. 결국 그 짧은 시간을 주기로, 어디선가 누구는 남을 속이거나 짓밟고 뭔가를 빼앗거나 해쳤으며 또한 죽였다는 뜻이었다. 벌한 존재감을 드러낸 범죄시계는 매해 더욱 빨라져 15년 뒤엔 대략 16초가 되었다. 그 후에도 더욱 강력하고 끔찍하게 일어난 수많은 범죄들을 보면서 나는 짐작하였다. 범죄시계는 결코 느려지거나 멈추지 않았다. 특히 세계의 사건사고를 다 지켜본다면, 평화는 이 세상에 없었다. 

언젠가 일식을 보기 위해 숨을 멈추고 기다렸던 때가 있다. 일식이 일어나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들어간 달 때문에 빛이 가려 대낮에도 밤과 같이 어두워진다. 사람들은 시간의 이치와 어긋나는 돌연한 어둠을 보며 이대로 세상의 끝을 맞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오직 찬란한 기다림으로만 일식을 맞았다. 잠시 빛을 가린다고 그 뒤의 태양이 없어지는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겼던 소망도 남아있을 테니 잠시의 어둠에 두려울 게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어둠보단 그 뒤에 다시 퍼질 빛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식을 지켜봤었다.

그날 이후, 언제나 일식을 기억해내며 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 세월동안 상처 입고 통곡하는데도, 태연히 흘러가는 세상에 문득문득 놀랄 때 마다였다. 사실은 나 역시 남에게 할퀴거나 다쳐 슬프던 때, 그때 마다였다. 일식을 떠올리면 범죄시계가 생각났다. 16초에 한 번씩 범죄가 일어났던 세상의 전후엔 무엇이 있었을까. 깜빡깜빡 어두워졌다 해서 우리의 빛나던 나머지 시간의 존재마저 잊고 살던 것은 아닐까. 범죄와 범죄사이의 그 15초 동안, 그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돕거나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둠 뒤의 빛을 기억해내며 나는 아름답고 소중하게 화합했을 세상의 내일을 다시 믿어보곤 하였다. 

미국에서 발생한 흑인가장, 플로이드의 사망사건은 코로나와 경제위기로 고통 속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에 도화선이 되었다. 항의시위는 세계로 번졌고 각국에서 인종차별반대에 동참하였다. 대낮에 거리에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목을 벌레 밟듯 무릎으로 눌러 죽인 그 살해현장은 생생하게 공개되고 그것은 경악을 넘어 절망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드러난 인종차별은 남의 나라 일로 넘길 수 없이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슬프게도 위치나 신분, 때론 성에 따라 여러 종류의 끔찍한 차별이 있어왔지만, 아직도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일어나고 그에 맞선 분노가 또 다른 폭력을 불러 약탈과 폭동으로 변한 세상이란 모두에게 참혹했다. 이것이 정말 ‘인간’인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한 일인가. 

빛의 기억만으론 차마 다시 믿어볼 수 없는 세상에서 나는 문득, 기도처럼 옛 영화제목을 떠올렸다. ‘쿼바디스! (Quo Vadis)’ 어디로 가시나이까. 어둠을 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일식 같은 암흑 속에서 나는 그저 물었다.

이정화(주부/작가)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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