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우리들의 신화

[이정화의 티타임에 초대] 우리들의 신화

기사승인 2020-06-17 12:27:27

2002년 월드컵유치가 확정되었을 때, 모두가 그것에 열광한 것은 아니었다. 월드컵 주요경기장이 들어선 상암지구는 쓰레기 매립장이 있던 난지도였다. 참을 수 없는 악취에 코를 움켜쥐며 난지도를 지나칠 때마다, 나는 산처럼 솟아오른 쓰레기더미와 그걸 버린 우리와 그럼에도 그 쓰레기에 의존해 삶을 영위해야 했던 판자촌 사람들에 절망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월드컵을 치르면 그 포장된 질서와 번영 뒤에 또 얼마나 우리의 경제가 어려울지, 봄이 되면 쓰레기 언덕에도 풀은 돋아났지만 과연 언제나 우리나라에도 진정한 새싹이 피어오를지, 경제도 축구도 몰랐지만 걱정은 깊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났을 때, 나는 내 평생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벅차게 자랑스러웠다. 우리선수들의 선전과 대한민국 4강 진출, 그 놀라운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붉은 악마를 대표로 월드컵을 통해 보였던 전 국민의 의지와 희망 때문이었다. 우리가 난지도에 묻은 것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부정과 무력감이었으며 상암에 세운 것은 경기장뿐 아니라 긍정과 화합의 신화였다. 

예상치 못한 우리나라의 승승장구에 비방을 일삼던 외국인들은 인터넷에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한국미녀와 돈, 심판을 합성해 ‘대한민국과 심판의 검은 거래’를 의심하는 사진을 올렸다. ‘붉은악마의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문구와 함께였다. 승자는 너그러워야 하는 법이라 나는 그런 기사에 흥분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사실 배후도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우리 가족은 온통 붉은 가족으로 살았다. 아이들은 거리와 집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고 붉은악마가 되었으며, 나도 붉은 엄마가 되었다. 매 경기마다 우리 공격수 뒤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달렸고, 축구 규칙을 모르는 나는 골키퍼 뒤에서 골문을 지켰다. 그러니 배후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우리였다. 국민 모두가 배후였다. 그렇게 이루어낸 2002년 6월 신화는 우리 생애 최고의 월드컵이었으며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던 순간이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나는 또다시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의 놀라운 진단시스템과 대응책은 세계가 주목하였다. 전에 내가 동경했던 대다수의 선진국과 복지국도 우리를 모범사례로 코로나19를 극복하려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일선에서 진단과 방역을 실시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정말로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개인위생과 거리두기에 애쓴 우리 국민들도 대견하다. 그렇게 모두가 힘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이 나라를 돕고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잠시 진정되나 싶었던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심상치 않다. 집단감염이 다시 발생되어 수도권의 방역조치는 강화되고 생활 속 거리두기도 무기한 연장되었다. 더워지는 날씨와 함께 장기전으로 돌입한 코로나19사태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해이해지거나 지쳤다. 겪어보지 못한 바이러스의 확산과 이에 따른 경제침체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사회전망도 암울하다. 그러나 이런 우려 속에서도 몇 번이나 연기되었던 개학이 전 학년 실시되었다. 어쩌면 개학은, 우리 모두가 멈추었던 일상을 되찾고 생활 속에서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마지막 판단기준이 될 것이다. 어린 학생들까지 코로나에 맞서 시험대에 선 이때, 정말로 우리 모두는 방역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서로의 전염원이 아닌 백신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가 자신과 사회를 지켜 이 시간을 이겨내면 우리는 2020년, 대한민국에 또 다른 신화를 만들 것이다. 바로 우리가 새로운 6월 신화의 영웅이 되려는 때다. 

이정화(주부/작가)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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