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폐쇄를 넘어 이를 폭파시켜 버렸다. 그리고 9.19 군사합의까지 파기시켜 버렸다. 순식간에 대화와 소통의 남북관계를 폭파시키고 대결과 불통 관계로 전환시켜 버렸다. 역대 정권들이 한 단계 한 단계씩 힘들여 쌓아 올렸던 남북관계의 공든 탑을 문 정권은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뜨려 버렸다. 그토록 문 대통령이 열창해 온 한반도평화의 노래는 일거에 폭파된 공동연락사무소 붕괴의 굉음 소리로 변했고, 남북대화의 실체는 파편처럼 산산조각 났으며, 아예 뿌옇게 솟아오른 회색빛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문 정권의 대북 정책은 왜 이런 대재앙을 초래했을까? 결론은 북한에 대한 무지(無知) 때문이다.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책 결정의 프로세스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 정권의 대북 정책은 맹목적 지지와 추종(追從)을 넘어서서 일종의 ‘핀란드화 현상’까지 갖고 있다. 주사파들이 이끌고 있는 문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는 주사파 아류(亞流)들의 원조주사파에 대한 맹목적 맹신(盲信)이다. 아니 문 정권의 대북 정책의 흐름은 추종을 넘어선 맹종(盲從)이다. 그냥 알아서 굽히는 스타일이다. 민족자주외교란 이름 하에 벌어진 대북 굴신(屈身)외교의 극치이다. 구소련의 접경국가인 작은 핀란드의 내부 정치인들이 구소련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알아서 굽신거리는 것처럼, 남한의 토착 주사파 역시 원조주사파인 북한을 향해 알아서 고개 숙이는 대북 기조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런 행태는 그동안의 남북 접촉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옥류관 냉면 한 그릇 먹고 난 이후에 펼쳐진 북한의 대남 조롱거리는 차라리 해외토픽감이다. “목구멍으로 냉면이 넘어 갑네까”라는 이 한마디 말에 북한의 대남 비하 의식이 모두 녹아 있다. 그런데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던진 조롱과 모멸의 메시지는 이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국가의 품격과 국민의 자존심까지 일시에 무너뜨리는 대남 모멸극이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단적인 사례는 옥류관 주방장의 대남 비난 발언이다.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는 이 모멸적 발언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듣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 무엇과 비교하거나 해석할 여지조차도 없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에는 ‘세계 10위에서 12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경제 대국인 대한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무슨 약점을 잡혔기에 경제력이 44배나 약한 북한의 일개 식당 주방장으로부터까지 모멸감을 받고도 대응조차 못 하는 것일까?’라는 여론이 팽배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아직도 평화의 환상에 잡혀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이 불러오는 평화의 노래로 한반도에 평화의 봄은 왔는가? 한반도 평화는 구조화되었는가? 그래서 마침내 한반도는 새로운 영구평화의 길을 열었는가? 한마디로 문 정권은 태산의 협곡처럼 비탈진 한반도의 위기상태를 어떻게 하면 지속 가능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나 정책을 모른다. 무조건 북한 추종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정말이지 대(大)착각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남북관계를 지속 가능한 정상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면 다음의 세 가지 상황에 대해서 정통해야 한다.
첫째, 북한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정통해야 한다. 둘째, 북한 핵 문제의 직접 협상국인 미국의 국내외적 상황에 정통해야 한다. 셋째, 코로나 이후 한반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지정학적 상황 전개와 이에 따른 미중 패권경쟁, 세계 패권을 둘러싼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 두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이 한반도, 특히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정통해야 한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 양국으로부터 불신의 벽만 높게 쌓아온 문재인 정권이 파국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다시 정상 복구시켜 보겠다는 의지는 높게 사지만, 그들의 능력과 주변 환경의 복잡성 등을 놓고 봤을 때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오히려 이에 따른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지금 문 정권의 대북외교의 실패는 남북관계의 실패보다는 대미외교의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개각에 기용된 인사들의 면면이 북측의 호감은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 측에게는 더 큰 경계심과 불신감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통한 새로운 남북관계의 해빙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 핵심 이유는 북한에게있어 최대의 현안은 곧 북미관계 개선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을 배제한 채 자주적인 남북관계를 주창한다. 그러면 남한은 이것을 실제로 믿고 북측의 주장대로 가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면 한미관계가 삐거덕거린다. 이런 상태가 되면 북미관계도 정상화되기 힘든 상황으로 빠진다. 미국은 북한의 이런 주장이 한미관계에 대한 이간질 외교라고 간파하고 북측 주장에 말려들지 않는다.
반면에 외교적 식견이 일천한 한국의 주사파들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북의 입장과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따르려 한다. 그런데 이들이 실제로 북한이 주장한 ‘미국을 배제하라’는 노선대로 움직이면 한미관계가 악화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그 틈바구니를 자신들이 파고든다. 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 미국과 접촉하려고 남한을 따돌린 것이다. 그리고 곧장 북미 간의 직접 관계로 나아가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한국의 주사파들은 이런 복잡다기한 북한의 외교 전술을 알 수가 없다. 남한의 주사파들은 이것도 모른 채 북한이 실제로 미국이라는 외세를 배제하고 축출하려는 의도와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민족끼리’란 구호하에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 아니 북한과의 동행의 차원을 넘어서서 북한을 대행한다. 북한이 남한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낸 다음, 바로 그 자리에 자신들이 파고 들어가려는 북미관계의 외교 전술을 펼치는 것도 간파하지 못한 채 남한의 주사파들은 미국으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어 이탈하려는 몸부림을 펼친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한미 간 이간질 외교도 결국에 가서는 미국에 의해 막히게 된다. 그 이유는 미국이 북한의 대남전술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한국의 대북 주사파식 외교의 함정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북한과 남한의 주사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은 한미관계가 악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북미관계 개선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미관계에 역효과를 결과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외교적 사례는 무척 많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한미관계가 악화되었을 때마다 북미관계가 곧장 개선되었던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반대로 한미관계가 좋았을 때마다 북미관계 역시 개선의 여지가 매우 커질 수 있었고 호전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문 대통령의 대북 전진적 주사파 인사가 미국을 배제하고서라도 독자적으로 남북관계를 뚫고 개선시켜 보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라면 이는 남북한이 처한 국제적 현실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조차도 없는 넌센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에 대한 일단의 우려가 우선 북측으로부터 나왔다. 북한이 어제(4일) 발표한 북한 최선희 외무상 명의의 담화는 필자의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면서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라는 형식을 통해 발표된 담화 내용을 보면 우리는 북한이 처한 현재의 입장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먼저 담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의 기억에서마저도 삭막하게 잊혀져 가던 《조미수뇌회담》이라는 말이 며칠 전부터 화제에 오르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당사자인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뿌르게 중재의사를 표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조미수뇌회담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미국집권층이 공감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지어는 그 무슨 《10월의 뜻밖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표명하면서 우리의 비핵화 조치를 조건부적인 제재 완화와 바꾸어 먹을 수 있다고 보는 공상가들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상의 발표내용을 보면 현재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특보 혹은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북미정상회담의 중재 역할에 대해서 북한이 갖고 있는 생각을 정확하게 알게 해준다. 한마디로 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 북한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방적인 추측이나 생각만으로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에 대해 나름의 불쾌감을 표하고 있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의 중재자로 나서고 있는 우리 정부의 관련자들을 향해 그들이 미국 대통령선거전에 ‘10월의 뜻밖의 선물’ 운운하면서 미국 측을 향해 마치 북한이 비핵화 조치라는 선물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하고 다닌 것을 ‘공상가’들의 ‘공상’으로 비하하고 있다.
그러면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나는 사소한 오판이나 헛디딤도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게 될 지금과 같은 예민한 때에 조미관계의 현 실태를 무시한 수뇌회담설이 여론화되고 있는데 대하여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 이미 이룩된 수뇌회담 합의도 안중에 없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에 집요하게 매여 달리고 있는 미국과 과연 대화나 거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 미국이 아직도 협상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듯 북한은 현재의 북미 상황이 북미정상회담을 갖기가 매우 힘든 상황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지금 남한이 중재 역할을 하고 나선다고 하더라도 북미정상회담에 나설 의향이 전혀 없거나, 할 수 없는 상황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자칫 남한의 중재로 인하여 북미정상회담이 열려 북한이 자칫 오판하거나 헛디딜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초래할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남한에 의해 북미정상회담의 여론화가 조성되고 있는 것에 아연함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북미정상회담을 해봐야 북한이 의도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없다고 보고 있고,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북미정상회담은 의미가 없으며, 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북미정상회담은 새로운 판을 짤 만한 획기적 협상 결과가 나오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런 북한의 속사정도 모른 채 남한은 북미정상회담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모습이다. 그리고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 내용 가운데 눈여겨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계산표를 짜놓고 있다.”라는 대목이다. 이는 지금 당장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을 할 생각이 없으며,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는 것은 곧 북한도 대미전략의 구상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획하고 준비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금 당장 김정은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워 북미정상회담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점을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 핵심담당자들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끝으로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 내용 중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 누구의 국내 정치일정과 같은 외부적 변수에 따라 우리 국가의 정책이 조절 변경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 긴 말 할 것도 없다. 조미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북한은 미국의 대선 일정, 즉 국내정치에 북미정상회담을 제물로 내놓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선거용으로 자신들의 대미정책을 바꿀 생각도 없으며 기존의 핵 정책 또한 변경, 수정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북미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곧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을 위한, 즉 그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희생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북미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거부선언이다.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드러난 이러한 북한의 입장은 과거 북한의 대미정책 및 전략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점이 드러난다. 왜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자신들의 대미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트럼프의 대선 위기)를 맞았음에도, 이런 호기를 내팽개치고 스스로 북미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는가 하는 점이다. 또, 이러한 북한의 입장이 나오기까지의 한국과 미국의 움직임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제기된다.
첫째, 왜 문재인 정부의 외교조력자들은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에 응할 수 없는 내부적 현실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행동으로 북미정상회담의 중재에 나섰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의 북미정상회담 중재 역할에 대해서 이렇다 할만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셋째, 지금 어떤 이유에서든지 북한은 김정은의 국정리더십 공백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주사파들을 내각 전면에 포진시킨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정상화 될 수 있을까? 만일 있다면 남북정상회담까지 정상화될 수 있을까?
문재인 정권의 새로운 대북 외교팀들에게 한 마디 조언해 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다가올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시점에서 미국을 배제한 채 남북한 단독소통과 교류협력이 일방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는 정말이지 한반도에 새로운 재앙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확산과 미네아폴리스 주(州)의 흑인 플로이드의 사망 사건 파문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먹구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을 따돌리고 남북한만의 일방적 교류가 진행된다면 대선에 불리한 상황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역전의 카드는 무엇일 될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 아마도 그 카드가 무엇인지는 북한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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