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의약계 4개 단체가 정부의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 ‘안전성·유효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의학회 ▲대한약사회 등 4개 의약단체는 8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버텍스코리아 22층 중회의장에서 ‘첩약 급여화, 선결과제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온라인 정책간담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월경통·안면신경마비·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초 50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첩약 한제(10일분)당 수가를 ▲심층변증·방제기술료 3만2490원 ▲조제·탕전료 3만380원~4만1510원 ▲약재비 3만2620원~6만3010원(실거래가 기준) 등을 합해 총 14∼16만원 수준으로 책정했다. 오는 24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연내에 추진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4개 단체는 시범사업 추진 이전에 첩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박형욱 대한의학회 법제이사는 “이 자리가 한의학을 폄훼하려는 건 아니다”라며 “의학은 과학에 기반해야 한다. 한의학도 마찬가지다. 별도의 기준이 허용된다면 한의학의 과학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는 의료를, 한의사는 한방의료를 임무로 한다. 의료와 한방의료의 원리는 다르지만,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것. 박 이사는 “신의료기술의 평가에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에 등에 관한 평가를 거쳐야 하고,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은 안전성·유효성의 기준이 있지만,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대해선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건 위법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을 고려해 요양급여대상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의학과 한의학에 있어 다른 기준, 방법론을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첩약급여는 일단 유효성과 안전성, 경제성이 확보된 다음에 논의될 것이다. 졸속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을 언급하며 박 이사는 “복지부도 이걸 모르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토론에서 김대하 의협 홍보이사는 “안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검증의 과정을 거치는 게 현대의학의 본질인데 한의학은 지식만 누적됐다”며 “지식만 누적됐다고 새로운 체계로 넘어갈 수 없다.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이 돼야 한다. 오늘을 계기로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저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왕준 병협 국제위원장도 “의사와 한의사 간 직역 간 다툼으로 보는 건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현상”이라며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의료 정책을 어떻게 펼칠까에 대한 문제로 봐야 한다. 첩약이 이런 식으로 급여를 늘려간다면 다른 어떤 의료서비스들도 새로운 기준을 또 내세울 것이다. 의약계 단체가 모여 논의를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좌석훈 약사회 부회장은 “지난해 4월 한의약협의체서부터 반대의 입장을 냈지만, 선결과제는 정리되지 않았다”면서 “해당 시범사업과 관련해 대한한의사협회와만 논의하고 약사회와 한약사회는 배제됐다. 또 건강보험에 들어가기 위해선 의학적 타당성, 비용 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및 사회적 편익 등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환자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 말고는 적합한 사유도 없다. 치료행위에 대해서도 다른 치료 없이 첩약으로만 치료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런 평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186개 학술단체를 대표하는 대한의학회도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에 반대 입장을 냈다. 주명수 대한의학회 보험이사는 “의약품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립하기 어렵고 시판 후에도 부작용을 집계하고 연구한다. 임상연구에서 발견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품목이 취소되기도 한다. 시스템 없이 강행한다는 건 고스란히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 이사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보장됐지만, 경제성 때문에 급여화되지 못한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 등도 많은 상황에서 첩약급여화 시범사업을 밀어붙이는 건 국민건강과 의료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들 4개 단체는 시민단체나 소비자단체, 언론계 등을 포함해 확장된 논의를 진행할 토론회를 조만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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