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도 전에 좌초되나…‘박원순 조사단’ 두고 서울시-여성단체 갈등

출범도 전에 좌초되나…‘박원순 조사단’ 두고 서울시-여성단체 갈등

기사승인 2020-07-21 05:17:11

사진=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쿠키뉴스] 정진용 기자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을 밝히기 위한 ‘서울시 직원 성희롱·성추행 진상규명 합동조사단’(합동조사단) 출범이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시와 여성단체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서다.

20일 시에 따르면 합동조사단 참여 요청에 여성 단체들이 응하고 있지 않다. 시는 지난 18일 여성, 인권, 법률단체 등 9곳에 협조 공문을 보내 합동조사단에 참여할 전문가를 오는 22일 오후 6시까지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한국젠더법학회 한 곳만 요청에 답했다.

시 관계자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젠더법학회 측으로부터 오늘 내일 중 검토해서 결과를 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나머지 단체들로부터는 전화나 다른 경로로 답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단체들이 오는 22일까지는) 요청에 응하리라고 본다”면서도 “(응답이 없을 경우에 대한) 대안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는 적극적으로 시민단체에 협조를 요청해왔다는 입장이다. 시가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에 조사단에 참가할 전문가 추천을 부탁하는 공문을 보낸 것은 지난 15일, 16일에 이어 세 번째다. 지난 17일 송다영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이 두 단체를 방문했으나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

조사단 구성을 두고도 진통을 겪었다. 시는 애초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민관 합동조사단을 꾸리기로 했다. 그러나 ‘셀프 조사’ 논란이 일자 시는 지난 17일 “성희롱, 성추행 피해 고소사건에 대한 사실관계 규명과 재발방지대책 수립의 객관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원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이후 지난 19일 시는 전원 외부인사로 구성된 보완책을 제안했다. 시는 여성권익 전문가 3명과 인권전문가 3명, 법률전문가 3명이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여성권익 전문가는 피해자지원단체(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전문가는 국가인권위원회, 법률전문가는 한국여성변호사협회(여변),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한국젠더법학회의 추천을 각각 받겠다고도 했다. 
사진=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성단체들은 합동조사단에 강제수사권이 없어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시가 ‘피해 호소인’ 용어 등을 사용해 불신을 자초했다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여변은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강제수사를 촉구했다. 사실상 조사단 참여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여변은 “시는 지난 18일 조사위원 추천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우리에게 보내왔으나 시 직원 및 정무라인이 경찰수사에도 협조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강제력 없는 조사단 조사에 응할지 의문”이라며 “조사 대상인 시가 스스로 조사단을 꾸린다는 것도 공정성과 진실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시민단체측이 요구하는 것은 경찰의 강제수사 착수다. 진상조사에 앞서 박 전 시장 휴대전화 3대에 대한 재영장 신청과 서울시청 6층 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찰의 박 전 시장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경찰은 아직도 사건의 ‘키맨’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를 소환하지 않았다. 임 특보는 서울시 관계자 중 박 전 시장 성추행 피소 사실을 가장 먼저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날 김창룡 경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때문에 금주 내 임 특보를 소환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16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 입장문을 발표해 “시는 성폭력발생과 성 역할 수행에 대한 조장, 방조, 묵인, 요구를 해왔다”고 규탄했다. 이들 단체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안에서 박 전 시장과 지난 수년간 시 행정,사회,정책을 만들어온 사람들 다수가 사임했다”면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책임 있게 조사, 예방하려면 사임하거나 면직된 전 별정직, 임기제 역시 그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단체들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후 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 별정직, 임기제 정무 보좌관, 비서관 등으로부터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거야”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 등의 압박성 연락을 연이어 받았다고도 폭로했다.

시는 지난 15일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발표한 자리에서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 용어를 사용해 범죄 피해를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여성가족부가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규정한 뒤에서야 시는 명칭을 ‘피해자’로 통일한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피해자는 이번주 중 2차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이날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는 조율 중이지만 이번주 후반은 아닐 것”이라며 “(2차 기자회견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직접 진정을 넣을 지 여부도 함께 밝힐 것”이라고 발언했다.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