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유전자변이라도 췌장암은 ‘표적치료제’ 못 쓴다

같은 유전자변이라도 췌장암은 ‘표적치료제’ 못 쓴다

라핀나-매큐셀 용법, ‘BRAF V600E 변이’ 나타난 폐암‧흑색종서만 가능 

기사승인 2020-07-21 06:09:01
외국선 ‘올라파립’도 추가 승인…국내선 아직  

전문가들 “효과 확인 어렵지만 시도는 가능”


7월 20일 오후 5시 50분 기준 총 1728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국내 췌장암 환자에게 쓸 수 있는 표적치료제가 제한된다며 치료 기회를 확대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국 등에서 승인된 치료제들이 ‘췌장암’에서만큼은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적응증 확대 및 국내 도입은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시도해 볼 수 있는 항암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먹을 수 없는 제도를 풀어 달라”고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췌장암 말기인 동생이 있다고 밝힌 이 청원자는 “췌장암에 쓸 수 있는 표준치료제는 사실상 두 가지다. 폴피리녹스와 젬자+아브락산(젬시타빈+아브락산 병용요법)을 쓰고 효과가 없으면 더 이상 유효한 치료약이 없다고 한다”며 “동생은 두 가지 항암을 다 해보았고 약의 효과를 전혀 못보고 암이 더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전자 검사를 하니 BRAF V600E라는 유전자 변이가 나왔다. 여기에 라핀나와 매큐셀이라는 약을 쓸 수 있는데도 췌장암에는 법적으로 처방이 불가하다고 한다”며 “시도해 볼 수있는 항암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먹을 수가 없는 이 제도를 제발 풀어달라. 제발 암종에 상관없이 유전자변이가 나오면 그 약을 쓸 수 있도록 해 달라. 제발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국내에서 한국노바티스의 ‘라핀나캡슐+매큐셀정’ 병용요법은 지난 2017년 12월 흑색종 치료에 허가받았고, 지난해 3월 BRAF V600E 유전자 변이 양성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적응증이 추가돼 현재 보험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 췌장암 환자에게는 적응증이 없어 사용이 불가하다. 치료 효과가 확인된 임상시험 결과가 없고 BRAF V600E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비율도 전체 환자의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상명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 소화기내과 교수는 “같은 유전자 변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투여 시도는 해볼 수 있다. 효과가 일부 있다는 증례도 있긴 하다”면서도 “ 췌장암 특성상 표적치료제의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1~2건의 보고로 적응증을 획득하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췌장암에도 여러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지만 BRAF V600E 변이율은 3%정도밖에 안 된다”며 “해당 변이를 가지고 있는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라핀나, 매큐셀 용법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노바티스도 임상 근거가 부족해 적응증 추가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약제 외에도 췌장암에 쓸 수 있는 표적치료제는 매우 제한된다. 췌장암 특성상 치료 효과가 뚜렷하게 확인되는 치료제가 없고, 환자 수가 적거나 임상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약물 개발 또는 적응증 획득으로 가는 길이 어렵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쓰고 있는 약제라고 해도 국내에서 승인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황진혁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표적치료제로) 맞춤형 치료를 한 환자의 기대여명이 그렇지 않은 환자(유전자 변이가 있어도 그에 맞는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거나 유전자 변이가 없는 사람)에 비해 길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며 “참여한 환자 수가 적어서 정말 유의미하다고 볼 순 없지만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는 췌장암 환자라면 한 번 써볼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췌장암 환자에게서 효과가 일부 확인된 표적치료제는 크게 두 가지이며, 단독요법으로는 린파자(올라파립)가 있다. 올라파립은 BRACA 유전자 변이가 있을 경우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변이는 주로 난소암 등 환자에게서 발견되고 국내 췌장암 환자 중에서는 5%가 해당된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췌장암에 대한 적응증이 추가됐지만 국내는 아직이다.

황 교수는 “미국 FDA는 올라파립을 췌장암의 유지요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미국 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1~2년 내에 적응증이 추가되지 않을까 싶다”라면서도 “약제가 고가라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표적치료제를 써서 약효가 들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현실”이라며 “유전자 변이가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종양이 생긴 위치에 따라 유전자 변이 형태도 다르다. 진단 초기와 6개월, 1년이 지난 시기에도 변이가 바뀌기 때문에 하나의 타깃만 차단하고 교정한다고 해서 치료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표적치료제는 췌장암 환자에게서 가장 많이 발현되는 ‘K-RAS’ 변이를 타깃으로 하는 항암제다. 아직은 전임상 단계이지만 향후 5~10년 이내에 약물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황 교수는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췌장암 환자들의 치료접근성을 빠르게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황 교수는 “암 자체가 어려운 암이다 보니 치료제 개발이 쉽지 않다. 수백억을 들여 임상 3상까지 갔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제약사가 아니면 시도가 쉽지 않다”며 “빠른 접근성 등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개발되는 게 좋다. 전임상 데이터가 좋은 약물을 발굴해 개발을 지원하거나 글로벌제약사랑 연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상명 교수도 “최근 췌장암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 다행이지만, 국내 제약사가 개발하면 임상시험 진행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발된 약물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국가 지원이 있다면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췌장암 환자는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4%씩 증가했다. 췌장암 5년 상대생존율(완치율)은 2016년 기준 11.4%에 불과하다. 


국민일보 DB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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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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