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지역사회가 돌봄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주거공간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정애·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지역사회 의료인프라를 확충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역사회가 노인·장애인·환자 등을 돌보는 주체로 기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돌봄 서비스에 최적화된 주거공간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요소로 강조됐다.
이날 주제 발표는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홍윤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권혁례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주택본부장 순으로 진행됐다. 토론에는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박철웅 LH 공공주택사업처장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 기자 ▲양성일 보건복지부 복지정책실장 등이 참여했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역사회 돌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돌봄의 주체를 가족과 시설 두 가지로 한정하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고령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돌봄을 시설에 의존하면 노인진료비가 급속히 팽창한다. 시설에서는 뇌졸중, 심혈관계 질환 등 만성질환 환자를 한 번에 여러명 관리하기 어렵다. 시설 이용료가 건강보험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반면 돌봄을 가족 내에서 책임지면, 여성들에게 돌봄 노동이 전가된다. 돌봄의 질이 높아질수록 여성 복지는 하락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김 이사장은 공동거주시설 모델을 제시하며 지역사회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시설이 아닌, 제3의 주거공간을 마련, 고령·환자 친화적 환경으로 보수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공동거주시설에는 방문 간호사·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 등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 이사장은 이 공간에 상주하는 인력과 시설을 확충하면서 고용창출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고령화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교수는 65~75세 인구가 부양 대상이 아닌, 활동 인구로 분류된다면 인구부양의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 교수에 따르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거 형태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사람들은 보다 오랜 기간 사회 활동을 하고,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만큼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반드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홍 교수는 스마트 의료기기의 상용화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주거공간에 상시적으로 발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수면 패턴을 모니터링하는 침구 등 빌트인 형태의 스마트 의료기기는 일상에서도 건강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홍 교수는 스마트 의료기기로 수집된 의료 정보는가 안전하고 원활하게 저장·공유될 수 있는 인프라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역사회 의료체계 활성화도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홍 교수는 대학병원에 몰리는 환자들이 지역사회의 1차 의료기관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이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방의료원, 국·공립 병원, 보건소가 지역사회의 민간 병·의원들과 진료를 연계하고 서로 검진을 의뢰하는 등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혁례 LH 공공주택본부장은 지역돌봄을 위한 새로운 주거공간으로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공공임대주택에 돌봄센터·주거복지센터를 비롯한 생활 제반 시설을 신설해, 지역사회의 돌봄서비스 거점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 본부장은 구체적 모델로 지원주택을 언급했다. 지원주택은 요양시설이나 병원보다는 생활공간에 가깝다. 그러나 단순히 주거제공 복지가 아닌, 의료·요양·돌봄 등 종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원주택 제도는 고령자, 장애인, 노숙자 등에 지원되는 공공임대 주택과 기존의 주거지원서비스를 결합한 개념이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 인력에 대한 교육과 소통이 제대로 이뤄져, 실효성 있고 질 높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며 “각각의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될 수 있도록 철저한 평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난주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요양인력에 대한 명확한 규정도 없이 요양병원이 생겨났다”며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목표에 역행하는 환경이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의 요양 서비스는 본인이 스스로 서비스를 선택해 지원 요청을 접수하고, 지원을 받아내는 시장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부당청구 허위청구 등의 문제가 되풀이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내실 없이 파편화된 시범사업만 이뤄지는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박철웅 LH 공공주택사업처장은 “지원주택은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이라며 “돌봄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거주하는 지원주택은 주변 주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있는데, 이를 부담하고자 자처하는 지자체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 처장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할 방안을 마련해 지원주택이 도입된다면 물질적 지원과 돌봄 지원이 적절히 연계된 지역돌봄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 기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는 돌봄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는데,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라는 큰 그림만 그리고 있던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서비스의 주안점이 치료 중심에서 케어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며 “특히, 정신질환자의 경우 병원과 집의 중간 단계에 있는 돌봄서비스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기요양보호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돌봄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성일 보건복지부 복지정책실장은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소득이 낮은 사람만 대상으로 제공되는 혜택이 아닌, 보편적인 돌봄을 상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거공간 확보, 보건의료 복지분야 협업을 통한 대상자 발굴 및 욕구 파악, 부문 간 연계 서비스 제공 등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실장은 “이를 위해 국회와 협업해 지역사회 통합 돌봄 법 제정하고자 한다”며 “법을통해 기존의 돌봄 지원 제도를 종합하고 체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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