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동운 기자 = 최근 금융권에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예금액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예금액을 바탕으로 영업을 하는 금융사들이 예금이 늘어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속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한국은행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6월 말(상반기) 기준 은행 수신잔액은 1858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108조7000억원 급증했습니다. 지난 2019년에는 1년간 106조3000억원, 2018년에는 91조6000억원이 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과 반년 만에 지난해 1년 치 증가분을 넘어선 셈이죠.
저축은행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예금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저축은행 수신 총잔액은 70조7080억원으로 70조원선을 돌파했습니다. 지난달과 비교할 경우 ▲4월 1조4016억원 ▲5월 1조5946억원 ▲6월 9600억원 씩 증가했습니다. 불과 3개월 사이에 4조원이 증가한 것입니다.
고객들의 예금이 꾸준히 유입돼야만 대출영업을 할 수 있는 은행과 저축은행들에게 예금 증가는 호재임에도 불구하고 예금액 증가가 왜 금융사들에게 고민이 될까요? 정답은 코로나19로 인한 불안해진 시장 상황에 있습니다.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코로나19로 인해 실물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시장에 공급했습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초저금리 대출을 비롯해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만들었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정부는 자금을 풀어 시장에 자금이 자연스럽게 순환되길 기대했을겁니다. 기업들은 대출을 받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국민들은 소비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과 일반 시민들은 자금을 사용하지 않고 은행에 넣어버렸습니다. “아직 돈을 쓰기엔 안정적인 상황이 아니야”라면서 말이죠.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은 자금이 몰린 예금의 종류에서 알 수 있습니다. 상반기 은행 수신 증가액 108조7000억원 중 107조6000억원이 수시입출식 예금(MMDA)인 반면, 정기예금은 오히려 2조3000억원 감소했습니다. 증가한 예금 대부분이 언제 빠져나갈 지 알 수 없는 수시입출금 예금이다 보니 예금이 뭉터기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죠. 은행으로선 안정적으로 유지되야 할 예대율이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아 마냥 대출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저축은행의 경우 고민이 좀 더 깊습니다. 저축은행의 경우 대부분의 예금들이 은행들과 달리 정기예금 형식으로 예치됩니다. 일반 시중은행들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다 보니 ‘금리 노마드족’들이 높은 이자율을 따라 자금을 예금하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 저축은행들이 대출을 늘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채권 금리 등 전반적인 투자처의 기대 수익률도 낮아지고 있고, 최근 주식투자나 부동산쪽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계대출을 늘리기엔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적용되는 저축은행 입장 상 한계점이 명확합니다.
따라서 저축은행은 은행들과 다르게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 지급이 더 많은 ‘역마진’ 현상까지 발생할 우려까지 있는 셈입니다.
수신금액이 증가하는 추세는 금융권 뿐 아니라 정부도 고민입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자금을 공급했더니, 그 돈들이 그대로 은행 및 저축은행에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다시 경제 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다고 해서 그 돈이 시장에 스며들지 않고 예금의 형태로 들어가버린다면 ‘돈맥경화’ 현상이 일어나 ‘경제의 악순환’ 현상이 일어날 여지가 매우 큰 상황이죠.
이런 답답한 상황이 개선될 방법은 단 하나뿐입니다. 코로나19가 하루라도 빨리 끝나면서 실물경제가 살아나고, 활발한 투자 및 소비가 이뤄지는 방법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19가 심화되면서 당분간 이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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