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민규·전미옥·유수인 기자 = 전공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한 가운데 ‘다음 주’를 우려하는 병원과 환자들이 늘고 있다. 전공의들이 업무 중단에 나선 첫날부터 퇴원을 강요받은 환자가 발생하는 한편, 일부 병원의 응급실 교수진들은 24시간 근무조를 편성한 상태다. 오는 24일부터는 전임의(펠로우)도 파업에 가세할 예정이어서 ‘의료 공백’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에 따르면, 21일 오전 7시 인턴과 4년차 레지던트가 파업에 들어갔다. 응급의학과의 경우 연차와 상관없이 전체 전공의들이 일시에 업무를 중단했다. 22일에는 3년차 레지던트, 23일 1년차와 2년차 레지던트가 순차적으로 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 입원·수술 일정 조정한 병원들, 첫날은 조용
파업 첫날 병원 현장의 혼란은 예상보다 덜한 것으로 보였다. 앞서 지난 14일 진행된 ‘전공의 파업’ 당시에 비하면 아직 파업 참여 인원이 적고, 병원들도 지난 파업 경험을 바탕으로 입원·수술 일정 조정, 대체 근무 편성 등을 통해 업무 공백에 대비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경우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면서 외래 환자 수가 약간 감소한 것과, 외래 진료가 적은 금요일, 휴가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 종로 소재 서울대학교병원의 경우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각 병원별 출입구를 최소화하고, 환자 및 내원객들에 대해 일일이 진료카드나 QR코드를 확인하고 있었지만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지는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본관 입구에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3학년 학생이 1인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학생 옆에는 ‘의료계 현안에 대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3학년 일동의 성명문’이 있었는데 정부가 내세우는 의료정책(의대 정원증원, 공공의대 신설, 원격의료 추진, 한방첩약 급여화)에는 의사의 목소리가 없고, 의료계의 지속적인 대화 노력을 정부는 철저히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전공의들의 무기한 파업과 의학과 4학년 선배들의 국가고시 응시거부를 강력히 지지하고 응원한다며, 예비 의료인으로서 직업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동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서울아산병원과 서울성모병원 등 소위 빅5 병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일부 응급도 낮은 수술이나 외래진료 예약은 미리 줄여서 받았다”고 말했고,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도 “외래진료는 교수들이 담당하니 문제가 없고, 기존에 전공의들이 맡았던 수술 보조도 전임의가 담당하도록 조정했다”고 전했다.
고려대 구로병원과 국립암센터 관계자는 “금요일은 수술과 외래 환자 모두 적은 날이라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고 설명했고, 서울시 보라매병원 관계자는 “우리 병원은 금요일에도 환자 수가 많지만 최근 서울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급증하고 휴가철인 점 때문에 환자가 조금 감소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 사례도…환자도 병원도 ‘다음 주’ 걱정
일선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파업 때문에 퇴원하라고 한다”는 제목의 글을 쓴 작성자는 “시어머니가 돌발성난청와 이석증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입원 중이다. 그런데 오더 내릴 의사가 파업한다고 퇴원하라고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당분간 입원해서 치료해야겠다고 해놓고 오늘 오후에 퇴원 얘기를 하더라”라면서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보면서 웬만하면 불만 없이 참으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대학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치료도 못 받고 퇴원해야 한다니”라고 호소했다.
한 중증의 암환자는 “예정돼 있던 외래 진료를 보지 못해 응급실을 통한 내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한 암환우회 온라인 카페 회원은 “C병원에 암환자 전용 응급실이 있느냐. 코로나에 전공의 파업으로 응급실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묻기도 했다.
응급실은 이날부터 전공의 없이 교수진들로만 무기한 환자를 받아야 해 업무과중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 병원의 경우 응급의학과 교수들이 24시간 이상 근무를 불사해야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청한 모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하루 이틀 정도야 교수들이 커버하면 된다. 그러나 파업 상황이 연속될 경우 힘에 붙일 수밖에 없다”며 “오늘부터 24시간 근무로 조를 짰다. 오늘 아침 출근했으니 내일 퇴근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유인술 충남대병원 권역응급센터장은 “우리 센터도 전공의 12명이 전부 파업에 들어가 교수 9명이 3명씩 3교대로 돌아가면서 비상근무를 서야한다. 의약분업 파업 때는 두 명이서 3개월 동안 응급실을 지킨 적도 있다. 고생스럽겠지만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진료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이자 병원은 물론 환자들의 우려도 큰 상황이다. 보라매병원 접수처에서 만난 환자 A씨는 “(전공의가 파업하면) 서울은 괜찮지만 시골이 걱정된다. 시골은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지 않느냐. 시골 사람들에게는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나야 혈당약 처방 받으러 온 거지만 다른 환자들은 아니다. 빨리 타협을 해야 한다”며 “전에 왔을 때보다 환자도 많아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해야 진료에도 영향을 안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 B씨는 전공의들의 빈자리가 매우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B씨는 “전공의 파업과 관련한 내용을 잘 알진 못하지만 사실 그들이 모든 업무를 맡고 있지 않느냐. 교수들이 외래진료를 본다고 한들 그에 필요한 잡일은 전공의 등 아래 직원들이 하는데 진료에 차질이 빚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관계자는 “금요일 하루도 아니고 집단휴진이 장기화된다면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도 “장기화된다면 경증 환자들의 수술이나 진료 일정은 조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증 암환자 비율이 높은 국립암센터도 “아직은 일부 전공의만 휴진에 나섰기 때문에 수술이나 외래 일정에 큰 영향은 없지만 전임의가 파업하는 다음 주부터는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 힘들어도 파업 지지…정부 “면허 정지 등 법적대응”
그러나 현장의 교수들은 비상근무를 불사하면서도 전공의 파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유인술 센터장은 “전공의들이 협의해서 정한 것이기 때문에 불만 없다. 제자들을 생각해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며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 의사만 늘리면 된다는 현 정권의 인식은 문제가 있다. 적어도 지역의료의 장기발전 청사진을 내놓아야지 일방적인 정책 추진은 더 큰 혼란을 부를 것”이라고 피력했다.
전공의들은 의사 증원 등 정책을 제고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있기 전까지는 파업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박지현 전공의협의회장은 “정부가 4대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겠다고 약속한다면 단체행동은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 순차적 파업 외에 온라인 학술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정부가 정책 철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오후 의사단체 집단휴진 관련 온라인 기자설명회를 열고 “(의사단체가) 의사증원 등 현 정책의 폐기나 철회가 아닌 유보를 원한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정부는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 될 때까지 정책 추진을 멈출테니, 의료계도 집단행동을 중단하라는 요구다. 그러나 이날 설명회 직전 대한의사협회가 “정부가 정책 철회해야만 파업을 멈추겠다”고 밝히면서 별다른 소득 없이 입장 차만 확인한 셈이 됐다.
오히려 정부는 의사단체가 극단적인 파업을 강행할 시 면허 정지 등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손영래 복지부 대변인은 “현재 수도권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에 종식 될 때까지 정책 유보하고 집단행동을 유보하자는 것이 우리의 제안”이라면서도 “(의료인 파업사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법적 조항이 있다. 가급적이면 현실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김국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정부는 굉장히 우려하고 있고, 의사협회도 우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정부와 의사협회의 의견이 맞아서 그런 사태가 안 벌어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진료개시명령은 벌칙도 강하고, 면허취소까지 가능한 양형까지 있기 때문에 쉽게 명령을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러한 법적 절차가 안 쓰일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현재 할 수 있는 답변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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