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따가운 시선을 느끼기 시작한 건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화상 회의 준비를 위해 카페에 들어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은 이후였습니다. 먼저 앉아있던 손님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그 자리를 택했는데, 하필 큰 창을 마주 보고 앉은 죄로 행인들과 눈을 맞춰야 했던 것입니다. 뜻하지 않게 말이죠. 날이 좋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얼음이 담겨 찰랑이는 아이스커피도 놓여 있고 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모니터 안에 나타난 탓에 웃고 있었으니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긴 했을 겁니다.
문제는 지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시점이라는 것뿐이죠. 어디서든 인기 많은 창가 자리가 왜 비워져 있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노골적인 시선과 소리를 듣지 않아도 뜻을 알 것 같은 입모양을 한 사람이 지나갈 때는 ‘마스크를 안 썼나’ 싶어 귀를 만져보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머쓱한 기분에 서둘러 밖으로 나오며 한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쉽지 않겠구나’
퇴근 후 찾아본 게시물들, 역시나 욕으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영업제한 카페를 다룬 기사에 달린 일부 댓글 내용입니다. ‘저렇게 막아도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 가서 공부하더라’ ‘이 시국에 공부를 꼭 카페에서 해야 하는 것이냐’ ‘공부도 제대로 안 하는 것들이 보여주기 식으로 저러고 있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찍은 사진도 돌아다녔습니다. ‘집에서 못하는 공부가 카페에서는 되냐’ ‘목숨 건 허세’ 등의 공격과 함께 말이죠.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니 모두가 예민한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지금 당장 불씨를 누그려 뜨리지 못하면 수반되는 인명과 경제적 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싫으니까요. 연초부터 시작된 불안과 우울의 끝이 보이지 않는 점도 우리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필요한 것은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이 시국에 카페에 나와 공부해야 하는 이들의 사정은 무엇일까요. 도서관과 독서실이 막힌 상황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집에서 공부하면 된다’는 대안은 모두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특히 몸만 뉘일 방 한 칸이 전부인 혹은 그마저도 없는 이 시대의 청년에게 ‘시원한 집에서 안전하게 공부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하는 태도를 이해해야 한다거나 셀 수 없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보편’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는 어떤 잣대는 누구에게 폭력 일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안타깝지만 공부가 가능한 정서적·공간적 환경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카페에 나와 공부하는 어떤 이의 가방에는 본인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삶의 고충까지 담겨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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