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성범죄 저질러도 유지되는 의료인 면허, 이번엔 개선될까

살인·성범죄 저질러도 유지되는 의료인 면허, 이번엔 개선될까

의사면허 취소되도 재교부율 97%, 면허 재교부 소위원회에도 7명 중 4명 의사

기사승인 2020-10-07 01:00:16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살인, 성범죄를 저질러도 유지되는 의사면허. 이번에는 개선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강력범죄 의료인에 대한 면허취소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자격정지도 5건에 불과했다. 살인이나 성범죄 등 특정강력범죄 의료인에 대한 면허취소 규정은 없어 2010년에서 2019년까지 단 5명의 의사만 성범죄로 인한 비도덕적 진료로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의 행정처분을 받았을 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강간·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질러 검거된 의사가 848명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같은 기간 살인을 저질러 검거된 의사도 37명이었다. 하지만 의사면허는 계속 유지됐다. 현행 의료법의 의사 면허취소 요건이 ▲허위진단서 작성 ▲업무상 비밀 누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진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리베이트 등으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해 금고형 이상을 받은 경우 등으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음주 의료행위로 적발된 의사도 7명 확인됐다. 하지만 이들 모두 자격정지 1개월 수준의 처분에 그쳤다. 현행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한 형사 처벌도 불가능하고, 사실상 1개월 자격정지 행정처분만 가능하다. 지난 2014년 전공의가 음주 상태로 3살 어린 아이 턱 봉합 수술을 진행하고 2017년 당직 근무 중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음주하는 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지만, 의사들의 반발로 여전히 처벌·제재 상향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의사면허가 취소된다 하더라도 재교부율이 97%에 달해 사실상 종신직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최근 10년간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현황을 살펴보면 올해까지 103건 중 100건이 승인됐다. 의료법 상에 면허가 취소된 자가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도록 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보건의료인 행정처분 심의위원회 및 운영에 관한 예규’에 따라 면허 재교부 소위원회를 운영해 심의를 보다 강화했다. 심의 위원 7명 중 중 4명이 찬성하면 재교부가 승인되는데 이중 2명이 해당 직역의 위원이고 의료계에서 활동하는 의료윤리전문가 1명, 의료·법학 전문가 1명 등 의사가 4명으로 구성돼 신뢰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면허 재교부 소위원회가 운영되고 난 이후 28건의 신청 중 25건이 승인돼 90%의 재교부율을 기록했다. 리베이트 등 부당한 경제적 이익 취득 10건 중 9건이 재교부 승인됐고, 면허증 대여,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 등 중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도 모두 재승인됐다.

관련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일명 ‘의료인 면허 2 스트라이크 영구 아웃제’를 대표 발의했다. 면허취소 후 재교부받은 이가 다시금 면허취소 행위를 할 경우 면허를 영구취소하도록 하는 것이다. 권 의원은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병원으로 돌아와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와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환자의 안전과 알 권리를 위해 특정강력범죄 의료인의 면허취소는 물론, 범죄·행정처분 이력을 공개하는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강병원 의원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들의 의료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강 의원은 “살인·강간을 해도 의사면허를 유지한다는 것은 국민 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의사의 특권”이라며 “의료인은 생명을 다루는 만큼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과 직업윤리가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적격 의사에 대해서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지만 가장 높은 단계의 징계가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징계를 요구하는 수준에 그친다. 중윤위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징계는 회원 자격정지 3년에 불과하고 이 기간 내에 진료행위를 막을 수도 없다.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나쁜 의료인에 대한 방지책이 없다”며 “의사들도 나쁜 의사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의사면허 관리로 법망을 피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의사면허 관리를 위한 독립적인 면허관리기구를 설치해 수준 이하의 진료, 비윤리적인 의사에 대한 전문 처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00년 이전까지는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면허가 취소됐다. 해당 법은 의사들의 적극적인 진료를 막을 소지가 있다고 해서 개정됐고 이후 의료행위와 연관되지 않은 법령을 위반한 경우 의사면허에 영향을 줄 수 없게 됐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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