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사망자 명의로 의료용 마약 처방… 처벌은 전무

12년 전 사망자 명의로 의료용 마약 처방… 처벌은 전무

강병원 “건보 수진자 조회시스템 즉각 개편해 국민 건강 지켜야”

기사승인 2020-10-19 09:54:31

[쿠키뉴스] 노상우 기자 = 병·의원에서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처방받은 의료용 마약류가 최근 2년간 6000개에 달하지만, 처벌받은 경우는 1건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병·의원 등에서 사망자 49명의 명의로 154회에 걸쳐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가 6033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처방받은 154건에 대해 관계기관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처벌을 받은 경우는 전무하다.
 
최근 2년간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가장 많이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알프라졸람(정신안정제)으로 총 2973개에 달했다. 다음으로는 졸피뎀(수면제) 941개, 클로나제팜(뇌전증치료제) 744개, 페티노정(식욕억제제) 486개, 로라제팜(정신안정제) 319개, 에티졸람(수면유도제) 200개, 펜터민염산염 120개, 디아제팜(항불안제) 117개, 펜디라정(식욕억제제) 105개 순이었다.

이중 알프라졸람·졸피뎀·클로나제팜·로라제팜·에티졸람·디아제팜 등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인체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며 오·남용 시엔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 약물이다.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판단하에 적정량을 투입해야 한다. 실제로 해당 약물들은 강력범죄에 악용돼 심각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실제로 식약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처방자 중 한 명은 2018년 11월10일부터 2019년 11월21일까지, 1년간 의원을 옮겨 다니며 사망자 명의로 30번에 걸쳐 3128개에 달하는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치료 목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양이 처방되었음에도, 식약처의 제재는 없었다. 또 다른 처방자는 2007년 사망한 사람의 명의로 12년이 지난 2019년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았다.

사망신고 후 3년이 지나 사망자 명의로 마약류 처방을 받은 사람도 3명, 4년은 4명, 5년은 2명, 6년과 7년은 각각 1명, 12년은 1명이었다. 사망신고 후 최대 12년이 지난 망자의 명의로 진료와 처방이 가능한 근본 원인은 현행 국민건강보험 수진자 조회시스템이 ‘사망자’와 ‘자격상실인’을 구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도 건보 수진자 시스템에는 사망 여부가 표시되지 않고 자격상실인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사망자 명의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 현행 의료법 등에도 진단·처방 시 반드시 본인 확인을 하도록 강제하는 의무 조항은 없다.

강병원 의원은 “사망신고 후 12년 지난 망자의 이름으로 의료용 마약류 처방이 가능하도록 건강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라며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범죄 등 다른 목적에 악용되었을 소지가 다분하다. 건강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에 별도코드를 넣어 사망자, 장기체납자, 이민자 등으로 분류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수진자 조회 시스템을 즉각 개편해 사망자 명의로 이뤄지는 진료와 처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식약처 역시 의료용 마약류 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임에도 제도의 허점을 방기하고, 의심 처방 사례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했단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건강보험, 식약처 등 관계기관이 함께 사망자 명의 처방 방지를 위한 건보 시스템 개편 및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상 의심 사례에 대한 즉각 조사 체제 구축 등의 대책을 내놓을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nswreal@kukinews.com
노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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