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작고 작은 고졸 사원들의 위대한 반란은 끝나지 않았다. 10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흥행 중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의 감흥을 이어가고 싶은 관객들을 위해 준비했다. 이종필 감독에게 전해 들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비하인드 스토리. 극 중 인물들이 집에 가지 않는 이유부터 숨겨놓은 이스터에그까지, 지인들과 ‘삼토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Q&A 형식으로 정리했다.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 제목이 왜 ‘영어반’도 ‘토익반’도 아닌 ‘영어토익반’인가요?
-> 토익 600점을 넘으면 고졸 사원도 대리 진급의 기회를 준다는 회사 정책의 임시방편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이다. 감독은 ‘토익반’보다는 글로벌 시대를 강조하고 싶은 삼진그룹의 마음이 반영돼 ‘영어’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자영, 유나, 보람으로 그려지지만, 고졸 사원들의 연대를 강조하는 의미도 있다. ‘삼진그룹 고졸사원들’보단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 효과도 고려했다.
□ 자영, 유나, 보람이는 왜 집에 가지 않나요?
-> 캐릭터 설정을 할 때는 인물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모두 존재했다. 실제로 배우 이솜은 인터뷰에서 유나가 옥수동에 산다는 정보를 감독에게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최대한 메인 서사의 짜임새에 집중해 가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집으로 퇴근도 못하는 인물들에게 미안했던 감독은 일부러 먹는 장면을 많이 넣었다고.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꽈배기부터 국수,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 고졸 사원들이 빌리박 사장에게 ‘노!'(No)라고 외치는 장면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엔 액션 장면이 거의 없다. 고졸 사원들의 통쾌한 반란을 그린 영화에서 통쾌한 액션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 액션의 느낌을 주기 위해 감독은 말로 때리는 액션을 구상했다.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감독 루퍼트 와이어트)에서 유인원인 시저(앤디 서커스)가 처음으로 발화한 언어가 ‘노’(No)라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고졸 사원들이 영어에 능숙해진 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 여러 번 등장하는 ‘사과’엔 어떤 의미가 있나요?
-> 감독은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등장하는 ‘아이 라이크 애플’(I Like Apple)이라는 문장을 가져다 자영의 오프닝 대사로 썼다. 그렇게 첫 장면부터 등장한 사과는 과수원의 사과로 이어진다. 영희(심달기)가 건넨 사과를 자영이 먹을 수 있는지는 영화에서 중요한 대목으로 다뤄진다. 마지막 회의실 장면에서 빌리박(데이비드 맥기니스) 사장이 사과를 먹는 것으로 사과는 다시 등장한다. 감독은 사과에 대해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며 “관객들이 여러 해석과 감상을 가질 수 있도록 반복해서 배치해 뒀다”고 설명했다.
□ 감독님이 쏟아진 쌀알을 주웠던 경험을 인터뷰에서 언급하셨는데, 떨어진 동전을 줍는 영화 속 장면과 연관이 있나요?
-> 이종필 감독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연출을 제안받고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던 당시 집에서 쌀 포대를 쏟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자괴감을 느끼거나 우울해할 일이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쌀알을 줍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식으로든 정면승부해서 해결하는 영화 속 캐릭터의 영향이라 생각했다고. 감독은 일이 해결될 것 같은 장면에 ‘뭔가 떨어진 것을 줍는’ 모습을 넣고 싶었다고 한다. 영어 강사의 공중전화 장면에서 손에 들고 있던 동전이 바닥으로 쏟아지는 장면이 있었지만 편집됐다.
□ 지하철을 놓칠까봐 뛰는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요?
-> 을지로입구역을 배경으로 하는 해당 장면을 위해 제작진은 세 군데에서 찍은 후 CG 후반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추리영화인 동시에 성장영화라고 생각한 감독은 영화 ‘대통령의 음모’(원제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와 ‘고양이를 부탁해’를 많이 봤다고 했다. 특히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인 국철을 타기 위해 긴 지하통로를 뛰는 장면을 똑같이 구현해보고 싶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막차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택시도 부를 수 있게 된 지금 시대엔 더 이상 만나기 힘들어진 장면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페놀 방류 사건은 실화인가요?
-> 영화에서 자영이 목격하는 등장하는 폐수 방류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 세상에 알려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위치한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30톤의 페놀원액이 낙동강 상수원으로 흘러들어 수돗물을 오염시킨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환경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커졌고, 두산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듯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감독은 90년대에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페놀 사건을 가져왔다. 폐수가 펑 터져 나오는 이미지가 중요했다고.
□ 혹시 영화 속에 숨겨진 이스터에그(제작자가 몰래 숨겨 놓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 영화 오프닝에서 제목이 뜨기 직전에 1990년대 자료화면 중 영어 공부하는 장면이 있다. 해당 장면에서 텔레비전 화면이 작게 나오는데 감독은 그 안에 영단어를 숨겨뒀다. 일부러 CG 작업까지 하면서 영화에서 의미 있는 단어를 넣어뒀다는 것. 영화를 여러 번 감상하는 관객들을 위해 준비한 장면으로 그 시간이 1초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다고 하니,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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