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잠룡 장성민 “한반도 격랑 속 비보”… ‘동아시아 대석학’ 사망 애도

野 잠룡 장성민 “한반도 격랑 속 비보”… ‘동아시아 대석학’ 사망 애도

하버드 인연 소개… “20세기 동아시아 위대한 지도자로 김대중 등 꼽아”

기사승인 2020-12-22 09:21:11
▲2003년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초청 강연을 마친 후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왼쪽)과 미국 학계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에즈라 보겔(Ezra Vogel) 하버드대 교수가 만났다. 사진=장 이사장 페이스북 캡쳐

[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야권 잠룡’으로 거론되는 장성민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이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문제전문가 ‘에즈라 보겔 하버드 명예교수’의 사망 소식에 “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아니 대석학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장 이사장은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우리에게 ‘일등국가 일본(Japan as Number One)’으로 널리 알려진 보겔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로 90세”라며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중국과 일본 문제에 관한 한 최고 석학 중 한 분”이라고 말했다.

장 이사장은 자신과 보겔 교수의 인연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보겔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4월 24일 하버드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에서였다. 당시 나는 미국 듀크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있었다”며 “바로 그즈음에 벨퍼연구소로부터 북한 핵문제에 대한 초청강연을 받았고, 발표와 토론이 끝난 뒤 다과회에서 보겔 교수와 만났다”고 설명했다.

장 이사장은 당시 보겔 교수가 20세기를 이끈 동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 ▲일본의 나카소네 전 수상 등 5인을 언급한 점이 가장 인상깊게 남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보겔 교수가) 한국을 성공적인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매우 놀라운 기적이라고 평가했던 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직후여서였는지 (보겔 교수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과거 탄압을 받던 야당의 인권 운동가인 김대중씨가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큰 비전을 가진 지도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보겔 교수는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국정상화실장을 역임, ‘DJ 적자’라고 불리는 장 이사장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당부까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이사장은 “한미관계·중일관계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필요할 때면 보겔 교수의 논문이나 책 그리고 칼럼을 줄곧 찾아읽곤 했다. 80이 넘어서도 지치지 않고 저술활동을 해 온 그의 지적 호기심에 매우 감탄했다”며 “동아시아 문제가 새로운 복잡계에 빠질 때면 나는 항상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출구를 그의 글 속을 더듬으며 찾으려 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런 출구 찾기도 쉽지 않게 됐다. 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세계적인 동아시아 대전문가, 대석학을 잃었다”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미·중 충돌이 날로 격화되고, 그 충돌의 여파가 한반도를 향해 격랑의 파고를 일으키고 있는 이 시점에 그의 사망 소식은 분명 비보다. 너무 애석하다”고 슬픔을 표했다. 

다음은 장성민 이사장 페이스북 글 전문.

<하버드 동아시아 문제 대석학, 에즈라 보겔 교수가 말한 아시아 최고 지도자 5인은 김대중, 박정희, 덩샤오핑, 나카소네, 리콴유 >

우리에게 “일등국가 일본(원제: Japan as Number One)”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대표적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 에즈라 보겔 하버드 명예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올해로 90세였다. 그가 오랫동안 중국 문제를 연구해 왔던 하버드대 페어뱅크 중국연구센터도 페이스북을 통해 연구소의 진정한 대변자였고, 박식한 학자이며 훌륭한 친구인 에즈라 보겔 교수의 사망 소식을 알리게 되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나 역시 깜짝 놀랐다.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중국과 일본 문제에 관한 한 최고 석학 중 한 분이다. 그렇기에 그의 사망 소식은 나에게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와 맨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4월 24일 하버드 케네디 스쿨(행정대학원)에서였다. 당시 나는 미국 듀크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미국의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있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특별히 북핵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법과 비전에 관한 강연 및 저술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즈음에 미국 하버드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벨퍼연구소(Belfer Center)로부터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초청 강연을 요청받았다. 그리고 북핵 문제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끝난 후, 하버드 동아시아연구센터의 회의실과 플로어에서 조촐한 다과회 자리가 마련되었다. 바로 그곳에 에즈라 보겔 교수가 참석했고 그것이 나와의 첫 인연이자 만남이었다. 당시 에즈라 보겔 교수는 북한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다. 특히 한반도 정세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관계, 북중관계, 중일관계, 한일관계, 북일관계 등에 관해서도 관심이 넘쳐나 약 1시간 동안이나 매우 까다로운 질문을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석학의 질문에 사뭇 지적 긴장감을 느꼈고 그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지혜를 얻어 보려는 나의 계획은 애초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것도 과자 몇 개 얹어 놓은 종이 접시를 들고서 무려 1시간 동안이나 꼿꼿이 선체로 동북아시아에 관한 자신의 전반적인 의문을 던지던 그의 지적 호기심은 나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때 에즈라 보겔 교수와 짧지 않은 대화시간을 통해 대석학들이란 바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끊이질 않은 학자들이란 인식을 다시 한번 갖게 되었다. 왜 그렇게 많은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동아시아 전문가로서 동북아 지역의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현지 생각을 좀 더 생생하게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했다. 

당시 그와의 대화 중에 아직도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부분은 20세기를 이끈 동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로서 다섯 명을 언급한 점이었다. 그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민주주의자로서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리고 험난한 소용돌이 속에서 내부로부터 체제변혁을 시도하여 빠른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권위주의 지도자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을 그리고 국제적인 식견과 안목을 지닌 인물로 일본의 나카소네 전 수상을 인상깊게 평가했다. 그는 동아시아 지역이 가장 역동적인 정치경제발전을 일으키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진진한 연구대상이며, 특히 한국을 성공적인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매우 놀라운 기적이라고 평가했던 점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 막 퇴임한 직후여서였는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는 바로 과거 탄압받던 야당의 인권 운동가인 김대중 씨가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큰 비전을 가진 지도자”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망명 시절, “하버드에 머물렀을 때 만났었다”고 말하면서 “김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부터 깊고 강인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김 대통령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해 달라”는 특별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한국의 경제발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가건설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신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상황에 이르렀을지 의문"이라며 "그의 재임기간에 자유가 억압되고 희생됐지만 그는 가난으로 얼룩진 어려운 시기에 한국경제를 놀라운 성장으로 이끈 국가건설자(Nation builder)”라고 호평했다. 특히 보겔 교수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 전 대통령의 역사적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점과 더불어 "그가 아닌 다른 누가 한국의 지도자였을 경우에 과연 박 전 대통령처럼 강력한 권위주의 리더십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독재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고 있었던 매우 명민한 지도자였으며, 한국인들은 경제발전을 이룩한 그의 리더십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두 전직 한국 지도자에 대한 통찰(洞察)은 정치적 지역감정에 휩싸인 나머지 한국인들 스스로가 폄하하고 있는 우리 지도자들의 위대한 부분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 평가여서 듣고 있던 내 자신의 간담(肝膽)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더불어 중국의 덩샤오핑 전 주석,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수상 등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모두 산업화를 통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동아시아의 훌륭한 지도자들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경우에는 과거 나카소네 수상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을 때는 자신과 같은 학자들을 가끔 초청하여 여러 가지 사항들에 관한 제반 조언도 구하고 친구처럼 대화도 나누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교류를 즐길 수 있는 큰 지도자가 없는 것 같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실 에즈라 보겔 교수가 쓴 <일등국가 일본>이란 책은 1970~80년대에 세계적인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 셀러였다. 이 책은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분석하고 극찬한 책으로 전 세계 일본 연구가들에게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고려대학교 김병국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함께 한국의 경제성장을 분석한 책 <박정희 시대 : 한국의 변혁>을 펴냈고,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개혁개방정책을 분석한 <덩샤오핑과 중국의 변화>를 집필해서 출간했다. 

그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정책을 매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정책은 “중국을 잘 모르는 어설픈 관료들에 의해 중국을 미국의 적으로 만드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정책을 취할수록 중국 내부에 있는 친미인사들까지도 애국심을 자극하여 반미(反美)로 돌려놓는 매우 어리석은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며, 미국의 고위 관리들이 중국의 내부 역학관계에 대해 더 많이 배울 것을 요구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편한 한일관계, 한중관계에 대해서도 일본이 역사적 사죄를 통해 주변국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밝혔었다. 그는 특히 일본 아베 수상의 신사참배에 대해 “미국도 실망했지만, 한국, 중국과 대화의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는 일본 외교에 대해 실망했다”라는 평도 숨기지 않았다. 

나는 한미관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문제를 비롯한 중일 관계 등에 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필요할 때면 그의 논문이나 책 그리고 칼럼을 줄곧 찾아 읽곤 해 왔다. 그리고 80이 넘어서도 지치지 않고 저술 활동을 해 온 그의 지적 호기심에 매우 감탄했다. 동아시아 문제가 새로운 복잡계에 빠질 때면 나는 항상 이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출구를 그의 글 속을 더듬으며 찾으려 했었다. 이제는 이런 출구 찾기도 쉽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세계적인 동아시아 전문가 아니 대석학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더욱이 미·중 충돌이 날로 격화되고, 그 충돌의 여파가 한반도를 향해 격랑의 파고를 일으키고 있는 이 시점에 그의 사망 소식은 분명 비보(悲報)다. 너무 애석하다. 

에즈라 보겔 교수님, 
부디 영면하소서.

hyeonzi@kukinews.com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
조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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