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이탈 심한데 퇴근 동선까지 감시...요양병원 이중고

인력이탈 심한데 퇴근 동선까지 감시...요양병원 이중고

'코호트격리' 요양병원 인력지원은 아직...병원계 요구한 '전담요양병원 지정'도 느려

기사승인 2020-12-29 03:22:01
▲ 서울 중구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요양병원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집단감염이 잇따르면서 방역당국이 새로 적용한 '퇴근 후 동선 제출' 등 방역지침이 오히려 요양병원의 인력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20년차 간호사 A씨는 28일 쿠키뉴스에 "요양병원 방역을 강화한다며 매일 퇴근 후 동선을 적어내라고 한다. 문제 시 책임을 지우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며 "고생을 알아주기는커녕 책임을 떠넘기기니 속이 상한다"고 토로했다.

A씨는 "동선까지 감시한다니 가족들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걱정이다“며 ”인권 침해, 사생활 침해 아니냐"고 꼬집었다.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최근 전국 요양병원에 모든 종사자들이 퇴근 후 동선을 적어내도록 하라는 내용이 담긴 지침을 내렸다. 해당 지침에는 준수사항 위반으로 코로나19 감염이 발생 또는 확산될 경우 손실보상이나 재정적 지원이 제한될 수 있고, 추가 방역조치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부상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담겼다.

이같은 방역지침에 병원현장에서는 코로나19 방역의 책임을 의료진과 병원에 전가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2월부터 서울시와 복지부에 노인요양시설 및 요양병원 노동자에게 마스크 지급 요청과 함께 코로나 집단감염 대책 마련과 대응 메뉴얼을 준비, 노동자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방역물품, 집단감염 대책 대신 노동자들에 대한 동선 통제 강요뿐”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현장 종사자들의 책임과 의무만 강화한 지침은 인력이탈을 부추기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실제 집단감염으로 코호트(동일집단관리) 격리된 요양병원들에서는 의료진과 간병인 일부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인력 이탈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코호트 격리 요양병원에 대한 인력 지원과 당장 시급한 전담 요양병원 마련 등 방역당국의 조치는 한 발씩 늦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현재 코호트 격리 중인 요양병원에서는 수십 명의 수일 째 병상 기다리고 있다. 이날 기준 163명의 확진자가 나온 경기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에서는 33명의 확진자가 병상을 기다리고 있고, 서울 구로구의 미소들요양병원의 경우 확진자 170명 가운데 55명이 병상 대기 중이다. 현장에서는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진이 환자를 간호할 정도로 인력 부족이 심하다. 

손덕현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이손요양병원)은 “(동선 제출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고, 현장의 불만도 많다. 엄중한 상황이다 보니 인권보다 안전을 우선시한 면이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규제 위주의 조치는 근본 대책이 아니고, 확산도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요양병원은 고위험군과 기저질환자가 많아 사망률이 높은 반면 감염병 환자를 담당하기에 인력과 시설은 열악하다. 코호트 격리를 하면 병원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염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환자들을 빠르게 격리병상으로 옮겨야 하는데 지체되면서 확진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시급함을 알렸다.

그러면서 “인력부족이 정말 심각하다. 코호트격리 병원조차 아직 인력지원이 안 되고 있다. 방역당국 인력들은 급성기병원으로 먼저 지원되고 있어서 요양병원은 후순위로 밀려있는 것”이라며 “ 병원들이 협회로 인력지원을 계속 요청하고 있는데 새로 인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당초 대한요양병원협회는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을 지정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감염병 전담 요양병원 운영안을 발표했지만, 병원현장에서는 ‘정부의 대책 마련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꼬집었다.

손 회장은 “지금까지는 참고 정부의 대책을 기다렸는데, 이제 놓쳐선 안 되는 시급한 상황에 돌입했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정부는 문제가 터진 뒤에야 수습에 나서는 것 같다. 권역별 전담요양병원 지정을 건의했지만 현재 마련한다는 전담병원은 3곳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지금의 코로나 대유행은 적어도 내년 2~3월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자가 많은 전국의 요양병원들은 잠재적인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라며 “적어도 권역별로 몇 곳은 더 전담병원으로 지정해 병상을 비워놔야 또 다른 집단감염이 생길 때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전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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