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양부모의 학대로 16개월 입양아가 사망한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회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뒷북 입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인이 사건’은 지난 2일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그알)’를 통해 공론화됐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가 학대로 270여 일 만에 하늘로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그알이 주도한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도 연예인, 시청자 등 다수가 참여하며 국민적 분노가 일었다.
정치인들도 챌린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입법을 예고하며 적극적 행보에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6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일 하루에만 관련 입법 11개가 등록됐다. 이날(6일)도 3개의 법률안이 추가됐다. 여야는 오는 8일 본회의에서 아동학대 예방과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국회의 행보가 ‘뒷북’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5일 아동권리보장원을 방문하고 “우리 당 권은희 의원은 지난해 12월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국회에서는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오래 전부터 해결해야하는 문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활발하게 논의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자녀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이 상임위에 계류된 상황에 대해 꼬집었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4일 논평을 내고 “민법 개정안조차 상임위에 묶여 처리하지 못하고 잇는 무책임한 상황은 국민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라며 “국회와 정치권의 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자녀에 대한 징계권 삭제를 주 골자로 한다. 법안은 지난해 7월 발의됐으며 11월 법안소위에서 축조심사를 거쳐 정부안으로 통합 조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당시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의결이 불발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집행 정지 사태로 인한 여야의 대립으로 민생법안이 뒷방 신세가 된 것이다.
이같은 국회의 상황을 놓고 “예상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검찰 개혁, 부동산, 코로나19 등을 놓고 사사건건 벌어진 ‘정쟁’으로 의원들이 입법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기권 대학에 재학 중인 A씨(23·남)는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 때문에 외면당한 점이 가장 실망스럽다”며 “입법으로 당장 아동학대가 막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역할은 정치권이 해줘야한다. 맨날 싸우기만 할거면 국회가 왜 있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인 ‘N번방 사건’이 소환되기도 했다. B씨는(26·여) “N번방 때도 똑같았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는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었는데 ‘N번방 사태’와 같은 큰 사건이 터진 후에야 국회가 관심을 가졌다”며 “정치권이 현실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 전에 사소한 문제라도 국회가 관심을 갖고 나서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관련 상황에 대해서 더불어민주당도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n번방사건 재발 방지 3법’이라고 불리는 형법·성폭력처벌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미 2015년부터 이 문제가 지속돼왔고 그 과정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피해자와 가해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반성했다.
일각에서는 법의 경직성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이 실제 사회변화에 비해 경직돼 있어 ‘뒷북 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정치권이 입법 이외에 분야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법 차원에서 보완해야 하는 것은 물론 경찰이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도 짚어야 한다. 마땅한 처벌이 필요한 곳에 처벌이 이뤄져야 하고 수사권 조정 문제 등 모든 것들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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