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해피엔딩 ‘런 온’ [권해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의 해피엔딩 ‘런 온’ [권해요]

기사승인 2021-02-06 08:25:01
사진=드라마 ‘런 온’ 스틸컷. JTBC

[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살았으면 좋겠어. 상냥한 사람들을 바보 취급 안 했으면 좋겠어.” JTBC 드라마 ‘런 온’ 마지막 회에서 오미주(신세경)는 자신이 번역한 영화의 메시지를 언급하며 “이처럼 말해주는 작품이라서 참 좋았다”고 말한다. 가상의 영화를 두고 한 말이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완주한 시청자에겐 ‘런 온’의 주제처럼 들리기도 하는 대사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런 온’은 섬세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작품 속 인물들을 살핀 드라마다.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향해 ‘런 온’하는 로맨스 드라마’라는 작품 개요는 무해한 극본과 따뜻한 연출을 통해 시청자에게 온전히 전달됐다. 

인물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배경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듯 보이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이 탄생한 이유다. ‘런 온’은 영화 번역가, 육상선수, 스포츠 에이전시, 미술학도 등 다양한 직업을 로맨스를 위한 장치만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직업인으로서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인물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영화 번역가인 미주는 열악한 영화 현장의 통역을 맡아 온갖 사람들과 부딪히고, 육상선수인 기선겸(임시완)은 체육계의 뿌리 깊은 악행을 눈감지 못해 선수 생활을 그만둔다. 재벌 3세이자 유능한 스포츠 에이전시인 서단아(수영)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후계다툼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 늘 날이 서 있다.

사진=드라마 ‘런 온’ 스틸컷. JTBC

소통과 관계를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박시현 작가의 대사는 차진 ‘말맛’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런 온’은 말장난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곱씹으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사들로 서로 전혀 다른 환경을 살아온 개인이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큼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로맨스 문법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각자의 언어로 말을 하며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 자체가 로맨스인 셈이다. 이 흐름엔 장르의 전형이라는 게으른 핑계를 대는 폭력성도 무례함도 없다. 마지막회에서 미주가 선겸에게 건네는 말은 이 드라마가 보여준 로맨스를 정의한다. “우리는 아마 평생 서로를 이해 못 하겠죠? 우리 서로를 이해 못 해도 너무 서운해하지 맙시다. 그건 불가해한 일이고, 우리는 우리라서 가능한 것들을 해나가요.”

‘런 온’의 최종회에는 작품의 특징이자 장점인 상냥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 외에도 작품을 이루는 여러 인물을 섬세하게 조명하며 마무리 짓기 때문이다. 육지우(차화연)는 누군가의 배우자 대신 배우로서 사는 길을 선택하고, 김우식(이정하)은 기선겸과 함께 다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선다. 이영화(강태오)를 짝사랑해온 고예준(김동영)은 단아에게 사과를 듣고, 고백의 용기를 낸다. 자식에게 폭력적인 복종을 강요하던 기정도(박영규) 만이 모두가 누리는 해피엔딩의 바깥에 엉거주춤 서 있다. 드라마는 모든 인물이 한 극장에 모여 영화를 보는 것으로 끝난다. 비록 이들이 ‘런 온’이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각자의 인생에선 주연의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게끔 하는 장면이다. 동시에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트랙에서 나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은 결말이기도 하다. ‘런 온’ 속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잘살았으면 하는 이유다.  

inout@kukinews.com
인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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