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울산에서 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남동생으로 태어난 신 회장은 고등학생 때부터 장사에 손을 댔다. 당시 유통기한이 지난 쌀을 싸게 판매하려다 좌절, 이때 식품은 가격보다 질이 우선돼야 한다는 경영철학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1965년 신격호 명예회장과 갈등을 빚고 롯데공업을 세운다. 라면사업을 하지 말라는 신 명예회장의 만류에도 라면을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1978년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며 제2의 창업을 선언, 롯데가에서 발을 완전히 뺀다. 이 사건으로 신격호 명예회장과 신 회장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로 벌어지게 된다.
신춘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도 빈소를 찾지 않았다. 대신 장남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신춘호 회장을 대신해 빈소를 지켰다.
신 회장은 은둔의 경영인으로 알려진다. 농심에서 판매되는 유명 제품 중에는 신 회장이 직접 만든 제품명이나 광고 카피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국내 라면의 제왕 '신라면'은 한국인 입맛에 맛게 얼큰한 라면이라는 이미지와 농심의 오너로서 자존심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본인의 성씨인 메울 신자를 적용하면서 탄생했다. 신라면 제품 포장부터 디자인까지 신 회장의 손이 안닿은 부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짜파게티도 신 회장이 스파게티처럼 자장소스를 면에 비벼 먹는다는 방법에 착안해 이름을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 회장의 정성이 녹아있는 신라면은 1985년 국내 라면 업계 1위에 올라선 이후 현재까지 왕좌를 내주지 않고 있다. 신라면에 이어 백산수로 국내 생수 업계 1위 삼다수와 경쟁하고 있다.
신 회장은 한국 라면의 세계화를 일군 주역이기도 하다. 1971년 창업 6년 만에 해외에 라면을 처음 수출했고 1981년에는 일본 도쿄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 199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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