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졸업과 동시에 가해 학생의 학폭 기록을 삭제하는 규정을 없애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학폭을 당하고,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를 가보고, 정신과 약을 먹으며 매일 고통 속에 살아보지 않은 일반 학부모들은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학폭을 저질렀다면 최소한 흔적은 남아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피해자와 그 가족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간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피해 학생과 가족을 위해서라도 3호 보다 높은 학폭위 처분은 생기부에서 삭제하지 않는 법령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교육부는 지난 2019년 경미한 학폭 사안일 경우 이를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9단계로 구분된 현행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중 1호(서면사과), 2호(접촉·협박·보복금지), 3호(교내봉사) 등 경미한 학폭 사안의 경우 생기부 기재가 유보됐다. 다만 가해 학생이 조치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1~3호 조치를 2회 이상 받았을 경우에는 이전 조치까지 모두 생기부에 기록하도록 했다.
당시 교육부는 당시 현행 학교폭력 대응 절차가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간 소송을 부추기고 교사의 교육적 해결 의지를 약화시킨다고 취지를 밝혔다.
또한 현행법에 따르면 졸업 2년 후에는 처벌 수위와 관계없이 가해 학생의 학폭 기록이 모두 삭제된다. 상대적으로 수위가 약한 1·2·3·7호(학급교체) 조치는 생기부에 기재되더라도 졸업 즉시 삭제된다. 가해 학생이 4호(사회봉사)·5호(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6호(출석정지)·8호(전학) 등 중징계 조치를 받았더라도 졸업 직전 교내 학폭위 심의를 거쳐 졸업 즉시 삭제할 수 있다. 학생의 반성이나 변화 정도가 미흡해 기록이 지워지지 않았더라도 졸업 2년 후에는 무조건 삭제된다.
처음부터 이같은 조치가 시행된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학교폭력예방법이 개정됨에 따라 모든 학교폭력이 생기부에 기재됐다. 이후 가해자 측에서 대학 입시나 낙인 효과에 대한 걱정 때문에 교육청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일이 급증했다. 지난 2011년 단 1건에 불과했던 학폭 행정심판 청구사건은 2012년 21건, 2013년 89건으로 급증했다.뿐만 아니다. 가해·피해 학생 모두의 학교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정부는 2년만인 지난 2014년부터 학폭위 심의를 거쳐 가해 학생 졸업 후 학폭 기록을 생기부에서 삭제하고 기록 보존 기간을 기존 5년에서 2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학폭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터져 나오는 학폭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은 증거가 없어 유명인이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한 진실 규명이 어려운 실정이다.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부설 해맑음센터 관계자는 “생기부 기재는 학폭 억제 요인 중 하나인데 이것마저 없애버린 것”이라며 “초중고 학생 6000여명을 상대로 실태조사한 결과 학폭의 생기부 기재·보존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대다수였음에도 정책 심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이 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고 언급했다.
반면 주홍글씨 새기듯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다고 학폭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현숙 청소년상담소 ‘탁틴내일’ 대표는 생기부에 학폭을 전부 기재하고 졸업 이후에도 삭제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학폭이 발생하면 피해자 치유·회복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 더 나아가 재발 방지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모든 학폭을 생기부에 등재하게 되면 가해자는 대학 진학에 불이익을 당하고 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을 우려해 학폭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피해자는 더 고통받는 악순환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숙한 시기에 저지른 일로 평생 지장을 주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