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끔’하면 ‘쌩쌩’…금지 약물의 유혹

‘따끔’하면 ‘쌩쌩’…금지 약물의 유혹

WADA 조사 결과 전체 선수 44%가 금지약물 복용...적발률 0.5% 불과
"국내 경우 해외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약물에 대한 접근성 높여" 지적

기사승인 2021-03-17 06:00:03
사진=세계반도핑기구(WADA) 홈페이지 캡쳐
[쿠키뉴스] 김찬홍 기자 = 최근 프로야구는 약물 의혹이라는 초대형 스캔들로 들썩였다. 통산 109승을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의 백전노장 투수 송승준(41)이 약물 의혹에 휩싸였다.

송승준은 입장문을 통해 “금지약물인지 알고 즉시 되돌려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전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37)은 송승준이 이를 인지하고 받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이 사건은 진실 공방 중이다.

사진=해츨링 작가의 '동네 변호사 조들호' 중 캡쳐
◇ 왜 선수들은 금지약물을 복용하나

선수들이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이유는 경기력 향상, 신체 능력 상승이다. 대표적인 금지약물 중 하나인 스테로이드를 다섯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복용하면 웨이트 트레이닝을 1~2년 한 효과를 당장 볼 수 있다. 또한 각성효과를 일으키는 암페타인의 경우 평상시 보다 힘을 2배 이상 일으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금지약물의 부작용은 엄청나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경우 남성은 고환 감소·무정자증·여성형 유방, 여성은 무월경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간과 신장이 손상되고, 골다공증, 근골격계 이상, 우울증은 물론 심근경색·동맥경화 증세까지 일으키기도 한다. 드문 경우지만 과도한 금지약물 복용으로 인해 운동선수가 사망한 사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금지약물의 유혹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선수의 44%가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이 중 도핑검사에 적발되는 건 0.5%에 불과하다.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0% 이상이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폐해라고 지적한다.

과거 운동선수였던 A씨는 “직접 내가 경험한 건 아니다”라는 전제를 달면서 “과거 같이 선수생활을 하던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했다. 사실 유명세도 없고 기대를 크게 받은 선수들이 아닌지라 성적을 내기 쉽지 않았다. 그때 브로커들이 접근했다”고 얘기했다.

이어 A씨는 “동료들은 결국 브로커의 제안을 거절을 했지만 상당히 고민을 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들은 성적을 내서 연봉을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며 “5년에서 10년을 해야 습득할 수 있는걸 금지약물이면 한 달만에 되는데, 누가 흔들리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2018시즌 KBO리그 MVP로 선정된 두산의 김재환. 그는 약물 전력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 기껏해야 출장정지? 그러니깐 약물 복용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금지약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에서 약물 복용 적발 사례가 가장 많이 나온 스포츠는 프로야구다. KBO는 지난 2007년부터 도핑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약물복용에 대한 징계 강도가 낮고, 이로 인해 선수들이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왔다. 2016년 ‘1차 적발 시 72경기 출전 정지, 2차 적발 시 시즌 전 경기 출전 정지 조항’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처벌 기준이 미약해, 알게 모르게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특히 두산의 김재환은 10년 전인 2011년, 야구월드컵 대표로 출전을 앞둔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돼 1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이후 잠재력을 터뜨리며 2016년 골든글러브, 2018년 MVP까지 받았지만 ‘약물이 낳은 MVP’라는 꼬리표를 아직까지도 씻지 못하고 있다.

해외는 국내보다 처벌 수준이 훨씬 강하다. 단순 금지약물 복용이 아니라 소지 및 도핑검사 거부를 해도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약물 전력으로 커리어가 부정당하고 있는 베리 본즈. 사진=AP 연합
특히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금지약물에 상당히 민감한 리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등록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년 꾸준하게 도핑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금지약물을 소지하다 적발시 1·2차 때는 60~80경기의 출장 정지 징계를 내리며, 3차 이상 위반 시에는 영구 제명된다. 약물 검사에서 1차 적발된 선수는 80경기, 2차 적발 시 162경기 출장 금지, 3차 적발 시는 영구 제명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의 업적도 인정하지 않는 추세다.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역대 1위(752개), 최다 볼넷(2558개)을 기록한 베리 본즈는 과거 약물 전력이 드러나자 팬들의 온갖 야유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프로야구(MLB)에서 장기간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가 은퇴 후 헌액되는 ‘명예의 전당’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9번 연속으로 낙방했다. 메이저리그에서 300승 이상(354승)에 4672개의 탈삼진,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한 로저 클레멘스 역시 금지약물 복용사실이 밝혀지면서 커리어가 부정당하고 있다.

아시아의 수영 스타인 중국의 쑨양은 도핑 검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에 놓였다. 쑨양이 혈액샘플이 담긴 유리병을 깨뜨리는 등 행패를 부리자,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약물 복용 혐의가 있다고 판단, 2018년 자격정지 8년 처분을 내렸다. 쑨양은 징계에 불복해 스위스연방법원에 항소한 상태다.


식약처 브리핑 현장에 놓인 불법유통 스테로이드 제품들. 사진=연합뉴스
◇ 도핑도, 반도핑도 점점 발달한다

한편 금지약물 경력을 숨기기 위한 도핑 기술도 점점 발달하는 추세다.

스카치테이프 같은 것을 피부에 붙여서 금지약물의 소량을 천천히 체내에 투입하거나, WADA의 리스트에 없는 새로운 약물을 복용해 도핑 검사를 지능적으로 피한다.

약물 복용 후 도핑 검사를 바꿔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러시아는 정부가 국가대표 선수들의 도핑을 주도했고, 선수들의 소변을 바꿔치기해 당시 도핑 검사 결과를 바꿔놨다. 또한 고환암을 이겨냈던 ‘사이클의 황제’ 랜스 암스트롱도 도핑 검사 결과를 바꿔치기 하다가 뒤늦게 적발되기도 했다.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는 도핑도 등장했다. 수혈로 적혈구를 늘려 피로감을 줄이거나, 뇌에 전기 자극을 주는 브레인 도핑이 그것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운동 기능을 높이는 방법도 공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핑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이에 맞춰 반도핑 기술의 발전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신체에 착용 가능한 유연 소재에 약물의 광 신호를 증폭시키는 나노소재를 적용하여 인체의 땀 속 금지약물을 검출할 수 있는 웨어러블 센서를 개발했다. 인체의 땀으로부터 마약 및 금지약물의 복용 여부를 신속하게 고감도로 검출할 수 있는 기술로, 패치 형태로 제작되어 몸에 붙이고 있다가 검사가 필요한 시점에 빛을 투사하면 별도의 분석 과정 없이도 1분 이내 약물 성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매 대회마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은 현재 기술로는 밝혀낼 수 없는 선수들의 샘플을 냉동 보관 하기 시작했다. 실제 IOC는 2010년대 후반 들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의 약물 샘플을 재검사 해 도핑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역도 종목에 출전한 우리나라의 김민재는 당시 8위를 기록했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민재보다 기록이 좋은 7명의 선수 가운데 1위를 비롯한 무려 6명의 선수가 모두 도핑 검사에 걸렸기 때문이다.

◇ 결국에는 선수 본인의 의지가 중요

전문가들은 완벽한 도핑 근절을 위해선 선수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금지약물은 중독성이 강하다. 혹여 약을 끊는다고 해도 성적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온다. 금지약물 복용을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KADA측 관계자는 “최근에는 금지약물을 구입하는 게 상당히 쉬워졌다. 온라인을 통해서 스테로이드 판매가 급격히 늘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많은 유혹이 있을 것”이라며 “금지약물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다. 본인 스스로 금지약물이 위험한 것임을 자각해야 한다. 반드시 제안을 받으면 거절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브로커에게 제안을 받으면 경찰이나 혹은 KADA 측에 반드시 제보를 해주길 바란다. 선수들의 올바른 자세가 공정한 스포츠를 만들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
김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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