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재개발사업 구역 내 수상거래
쿠키뉴스가 3기 신도시 중 하나인 하남 교산지구 교산동·천현동·춘궁동·하사창동 일대 토지실거래 내역을 조사해보니 기획부동산으로 의심되는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조사 범위는 정부가 3기 신도시 입지를 발표한 2018년 12월 19일 직전 2년간이다. 조사 대상은 대토보상으로 ‘협의 양도인 택지’를 받을 수 있는 1000㎡ 이상의 거래 내역으로 한정했다.
그 결과 천현동 한 토지의 경우 지분을 나눠 가진 소유주가 총 147명에 달했다. 이들에게 지분을 판 땅 주인은 서울 강남구에 소재지를 둔 한 개발회사였다. 이 회사는 2018년 1월8일 대지를 사서 12월20일까지 지분을 쪼개 팔았다. 3기 신도시 발표 시점이 같은 해 12월19일이었음을 미루어 보아 정황 상 신도시 개발 정보가 사전 유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구역뿐만이 아니었다. 김상훈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신고된 지역 실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획부동산으로 의심되는 법인 553곳의 토지·임야 판매 사례를 분석했다. 기획부동산들은 이 기간에 남양주 하남 등 3기 신도시 7곳의 약 177만1899평(585만7519㎡) 토지·임야를 판매했다. 총 판매액은 6744억8068만원이다. 지역별 판매 건수를 보면 경기 시흥시가 31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남시(157건), 남양주시(116건), 광명시(85건), 고양시(68건), 부천시(12건) 순이었다.
이같은 사례는 서울에서도 발견됐다. 당초 공공재개발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던 이태원 한남1구역에서는 정부가 지난해 9월21일 공공재개발 사업을 공모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까지 기획부동산으로 의심되는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발표 날 이전까지 해당 구역 내 토지나 건물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개발이 이뤄질 시 입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모사업 발표 5일 전 한 대지(179㎡)에서는 토지주가 9명으로 늘기도 했다. 이들의 지분율은 11% 안팎이다. 주소는 부산, 경북 영덕‧울진, 경기 구리‧남양주, 서울 강남 등으로 연령대는 48년생부터 93년생까지 다양했다.
문제는 이같은 기획부동산이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기획부동산은 일반적으로 법인 설립 후에 토지를 고가 판매하고 법인 변경이나 폐업 등의 방법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때 정부의 신도시 토지 보상가격이 높아지곤 한다.
원주민을 몰아낸다는 점 또한 기획부동산이 유발하는 안좋은 사례다. 통상 재개발사업 추진을 위해선 그 지역 주민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이때 정작 원주민들은 개발을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분을 쪼갠 만큼 늘어난 소유주들의 입김이 수적으로 더 강해 구역 내에서 쫓겨날 수가 있다.
한남1구역 한 주민은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지분을 나눠 가진 외지인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건물을 찾아가보면 빈 집이 수두룩했다”며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건물과 땅을 쪼개 판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알고서 들어왔냐는 것이다. 주민들과 토론 한 번 없이 한남1구역을 개발 후보지로 추천했던 용산구청 등 공무원들이 업자들과 관련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다”고 의심했다.
기획부동산, 사전정보 어떻게 알았나
물론 기획부동산 자체를 불법으로 볼 순 없다. 지분을 공유한 것 자체만으로는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 정보가 미리 샜다면 문제가 된다. 이번 LH 사태도 결국 공기업 내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사건이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4월부터 신규 공공택지 발표 전후로 투기가 의심되는 토지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조사에는 부동산거래관리시스템이 활용된다. 조사대상지는 단기거래량이 급증하거나 지분 쪼개기 거래가 일어난 지역 등이다.
다만 업계는 실질적 처벌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기획부동산이란 게 100% 정보를 가지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공기업 내에서 개발 후보지역 얘기가 나오면 이를 들은 직원이 해당 지역이 개발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주변에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정보 유출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이를 가려낼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신도시 예정지 대부분이 그린벨트로 묶여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거래가 활발하지 않다가 발표 직전에 거래가 늘었다는 건 내부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의심을 할 수는 있다”면서도 “지분을 공유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접근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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