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열여섯의 책임, 직업계고②] 그래도 기능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기획-열여섯의 책임, 직업계고②] 그래도 기능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기사승인 2021-04-06 06:05:01
2020 서울기능경기대회 자동차 차체수리에 참여한 참가자가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메달을 따 대기업에 취업했을까. 졸업 후 아버지와 함께 일했을까. 고(故) 이준서군이 살아있었다면 말이다. 1년이 지났다. 이군은 지난해 4월8일 경북 경주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서 합숙 훈련을 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군의 가족과 친구, 시민단체는 죽음의 원인으로 기능반을 지목했다. 

영상 제작=우동열 PD, 촬영=김해성·이승주 영상기자
◆ 심부름·폭력·성희롱, 불 꺼지지 않는 기능반에서는
직업계고는 기능경기대회 입상을 목표로 기능반을 운영한다. 이군의 기능반 활동은 입학 전부터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 2017년 12월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선배들을 보조했다. 정규 수업을 듣지 않고 기능실에서 종일 훈련했다. 기능경기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대기업과 교사, 공무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선배들이 걸었던 길이다. 이군은 재능이 있었다. 자동화 설비의 기반이 되는 메카트로닉스 종목에서 두각을 보였다. 2019년에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전도유망했던 이군은 기능반을 그만두고 싶었다. 기능반 지도·감독은 선배들의 몫이다.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선배의 훈련 뒷정리를 하느라 새벽 3시가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군은 담배 심부름을 거절했다가 뺨을 맞았다. 선배들은 부모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이군의 기능반 친구는 “강압에 못 이겨 정액이 담긴 율무차를 이군에게 속여 마시게 했다”고 증언했다. 폭력은 대물림됐다. 이군은 선배가 된 후, 배운 대로 군기를 잡았다.

후배를 때린 것은 이군의 약점이 됐다. 학교는 기능반을 그만두면 덮어주었던 폭행과 흡연 등 비위를 징계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기능반을 탈퇴하면 대기업 추천장도 날아간다. 이군은 아버지에게 “그냥 아빠 회사 취직하면 안 돼?”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그 순간을 후회한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가지 못한 것을.
 
고 이군의 아버지 이진섭씨와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해 국회에서 이군 사망 관련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박효상 기자  
◆“남 일 같지 않다” 4000명의 또 다른 아이들 
전국 곳곳에 또 다른 이군이 수천명 있었다. 지난해 인천의 한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한윤성(21)씨. 웹디자인 및 개발 종목 기능반 학생이었다. 조회를 마치면 수업을 듣지 않고 종일 기능실에서 훈련을 했다. 새벽 4시까지 대회를 준비할 때도 있었다. 그는 “이군의 죽음이 남 일같이 느껴지지 않았다”며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기능반 출신 졸업생도 “기능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매우 힘든 일이었다”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구토하고 항우울제까지 먹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기준, 지방기능경기대회 참가자는 4688명이다. 이중 직업계고 학생은 4489명에 달한다. 같은 해 전국기능경기대회에는 1847명이 출전했다. 금·은·동 메달은 50개 종목 총 288명에게만 돌아갔다. 나머지는 대기업 특채 등 약속됐던 보상에서 멀어진 것이다. 고교 3학년 때까지 메달을 따지 못하면 낙오된 것과 같다. 3년간 정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상황에서 수능시험을 치를 수도 없다. 일부 학생들은 메달 도전을 위해 고교 졸업을 유예한다.

학교는 기능반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훈련하도록 했다. 교사들은 출석부를 거짓으로 적었다. 메달은 학교의 자랑이자 교육청과 시·도청의 실적이다. 일부 시·도에서는 기능반 성적에 따라 지급되는 예산이 달라진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군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장으로 활동한 권영국 변호사는 “학교는 명예와 실적을 위해 학생을 동원하고 있다. 학교는 메달 수에 따라 줄 세워진다”며 “왜 학생들이 메달을 따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이제 만 16세가 된 학생들이 우리나라 기능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비판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박태현 기자 
◆“1년 전과 다를 게 없다” 도돌이표 된 기능반  
교육부는 지난해 6월 개선방안을 내놨다. 기능반을 정규 심화 동아리로 구성·운영하고 학교에서 이에 대한 운영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및 방과 후 운영 ▲공개모집과 자유로운 입·탈퇴 ▲기능반 및 기능경기대회 관련 공익신고센터 설치 ▲정규수업 반드시 참여 ▲오후 10시 이후 야간 교육 및 휴일·합숙 교육 원칙적 금지 등도 마련됐다. 다만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는 경우에 한해 야간·휴일 교육이 가능하다는 단서가 달렸다. 

이달 열리는 지방기능경기대회를 앞두고 일부 학교에서는 방학 기간 동계 훈련을 진행했다. 교육부는 방학도 학기에 포함되기에 ‘과도한 훈련’만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정규수업 참여는 다시 느슨해졌다. 직업계고 교사들은 쿠키뉴스에 “기능경기대회를 앞두고 기능반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능반 담당 교사들의 감독 없이 훈련이 이뤄진다면 폭력·안전사고 등의 문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공익신고센터가 설치된 지난해 5월부터 지난 1일까지 기능반과 관련해 접수된 신고는 총 0건이다. 사실상 공익신고센터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선 방안 발표 후, 학교와 교육청 등에서 야간·휴일훈련을 허용해달라는 민원이 많았다”면서 “섣불리 완화할 수 없어 지난해와 동일한 방침으로 기능반·기능경기대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학교를 점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각 교육청과 논의해 점검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했다.

2020 서울기능경기대회 참가자들이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박효상 기자 

soyeon@kukinews.com

영상 제작=우동열 PD, 촬영=김해성·이승주 영상기자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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