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2021년 대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동일인(총수)로 지정하지 않았다.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는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왔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형평성 문제를 따져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도 한계를 인정, 대기업지정 관련 잣대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2021년 공시대상기업 집단에 8개 기업이 신규 지정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쿠팡,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현대해상화재보험, 중앙, 반도홀딩스, 대방건설, 엠디엠, 아이에스지주 등이다. KG는 제외됐다.
사상 첫 외국인 총수는 탄생하지 않았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김범석 쿠팡 의장이 총수 지정에서 제외됐다. 공정위는 창업자 김범석(미국인)이 미국법인 ‘Coupang, Inc.’를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지만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는 국내 최상단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온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현행법 역부족이 컸다. 공정위 김재신 부위원장은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부분(동일인관련자의 범위, 형사제재 문제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부위원장은 “김범석을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쿠팡㈜를 동일인으로 판단하든 현재로서는 계열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도 고려했다”고 부연했다.
공정위 발표가 나오자 시민단체 반발이 터져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같은날 성명서를 통해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작동하도록 법 제도를 운용해야 할 공정위가 이번에 또 다른 사익편취 특혜를 만들어 향후 쿠팡과 같은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정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향후 사익편취 규제와 형사처벌 등 법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총수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며 “공정위가 경제검찰의 역할을 스스로 부인한다면, 행정소송 등을 포함한 모든 가능한 대응을 시민·노동단체들과 연대해 추진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는 공정위 발표 이전부터 대기업집단 지정에 반기를 들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7일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제안서를 발표했다. 전경련은 제도 도입 근거인 경제력집중 억제의 필요성이 사라졌고 과도한 규제가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쿠팡이 최근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대기업집단 지정제도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세계 경쟁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대 흐름을 맞추기 위해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법률 전문가는 진단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공정거래 분야를 담당하는 손금주 변호사는 “경제계와 학계에서는 대기업 집단 지정 규제가 시대를 역행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며 “정부는 이같은 사회적 논의에 대해 80~90년대에 만들어 낸 대기업 집단 규제가 현재 상황에서도 맞는지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기업의 역할도 빼놓지 않았다. 손 변호사는 “ESG 경영 관련해 논의가 활발한 상황”이라며 “기업활동에서도 지배규제 문제 해소가 불가피 할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정위는 현 대기업 집단 규제 개선을 약속했다. 김 부위원장은 “이번 지정을 계기로 동일인 정의·요건, 동일인관련자의 범위 등 지정제도 전반에 걸친 제도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연구용역을 통해 동일인의 정의·요건·확인 및 변경 절차 등 동일인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화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현재 동일인의 정의·요건 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제도의 투명성이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정책환경이 변화해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판단될 수 있는 사례가 발생했으나 현행 규제가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당장에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판단 규제하기에는 집행가능성 및 실효성 등에서 일부 문제되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했다.
기업집단 효과적 규제 집행 방안, 동일인관련자 범위의 현실 적합성 등도 검토한다. 김 부위원장은 “지정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 및 개선을 추진해 규제 사각지대를 방지하고, 규제의 현실적합성·투명성·예측가능성을 높여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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