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의 말대로 야구의 인기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7년 역대 최다인 840만 관중을 기록했던 KBO리그는 이듬해 807만 명, 그리고 2019년에는 728만 명으로 입장 관객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국민들의 관심도 크게 떨어진 모습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23일과 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국내 프로야구에 관심있다’고 답한 비율은 34%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16%는 ‘매우 관심 있다’고 답했고 18%는 ‘어느 정도 관심 있다’고 밝혔다. 반면 ‘별로 관심 없다’는 26%, ‘전혀 관심 없다’는 38%로 나타났다. 2%는 의견을 유보했다.
비단 프로야구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 만원 관중이 기본이었던 농구는 이제 100만 관중도 동원하지 못하는 비인기 종목이 됐다. 2019년에 전년도 대비 관중 수가 52.9%나 늘어난 프로축구는 코로나19로 인해 인기 상승에 제동이 걸렸다. 대한축구협회(KFA)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해 통합 중계권을 방송사에 파는 데 난항을 겪기도 했다. 프로배구는 최근 시청률이 크게 늘었지만 여자배구의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 툭하면 터지는 스포츠계 부정 이슈, 팬들은 지쳐 떠나간다
프로스포츠는 출범 이후부터 꾸준히 음주 운전, 승부 조작, 선수단 간 폭행, 성추행, 원정 도박 등 부정 이슈에 시달렸다.
올해만 봐도 지난 2월 여자배구 흥국생명의 이재영·이다영 자매와 남자배구 OK저축은행 송명근, 심경섭이 학창 시절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한 피해자의 폭로로 드러났다. 프로배구를 시작으로 각 종목 현역 선수들의 과거 행위에 대한 폭로가 잇따랐고 해당 선수의 팀과 종목은 큰 위기를 겪었다.
현직 코칭스태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로배구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이 12년 전 국가대표팀 코치 시절 박철우를 폭행한 사실이 재조명받으며 이 감독이 잔여시즌 출장을 자진 포기했고, 결국 감독직을 내려놓기도 했다.
프로농구는 학교 폭력 이슈를 피해갔지만, 음주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4월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뛴 기승호가 시즌 종료 후 선수단 회식 중 술에 만취해 후배 4명을 때렸고 그 중 국가대표이기도 한 장재석은 안와골절까지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삼성의 김진영은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김진영은 이 사실을 구단에 알리지 않은 채 은폐했으나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논란을 가중시켰다.
게속되는 논란으로 팀과 선수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팬들은 지쳐 프로스포츠 응원을 포기하고 떠나는 모습이다.
과거 프로야구의 팬이었다는 A(34)씨는 “예전에는 야구가 내 삶의 전부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를 보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하루의 끝은 야구였다”라며 “이제는 아니다. 내가 응원하던 팀과 선수들이 논란을 계속해서 일으키는 걸 보면서 이들을 응원할 이유를 느끼질 못하겠다. 범죄자를 응원하고 싶지 않다”고 비판했다.
구단 관계자들도 속이 타들어가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단 관계자 B씨는 “선수가 물의를 일으키면 구단 입장에선 최악이다. 모기업 입장에선 이미지 개선을 위해 프로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데 오히려 이미지가 실추되는 모습이다”라며 “무엇보다 팬들이 떠나간다. 충성심 높은 팬들이 떠나가면서 점점 프로스포츠의 인기도 떨어지는 모습이다. 모두가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e스포츠, OTT… 프로스포츠를 대체할 게 너무 많아진 세상
최근 프로스포츠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경기가 중단되고 취소되면서 관중들은 경기장을 찾지 못했다. 자연스레 프로스포츠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프로스포츠의 하락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팬들과 관계자들은 프로스포츠를 대체할 놀거리가 늘어나면서,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하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구단 관계자 B씨는 “최근 프로야구의 인기가 떨어진 것이 체감된다”며 “스포츠가 아닌 다른 문화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질이 올라가면서, 스포츠를 즐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하루를 재밌게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야구를 비롯한 기성 프로스포츠가 흔들린 반면, e스포츠는 대성장을 이뤄냈다. 유튜브를 통해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접근성이 높은데다가 짧은 경기 시간, 역동적이고 화려한 볼거리 등이 넘쳐 게임에 익숙한 MZ(밀레니얼+Z세대, 1980~2000년대 출생) 세대에게 선호도가 높다.
라이엇 게임즈에 따르면 e스포츠 대표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는 2013년 이후 꾸준히 관객, 시청자 수가 늘어났다. 지난해 서머 시즌 LCK 평균 국내 동시 시청자 수는 약 16만6000명에 달했다. 일일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30만 명, 일평균 순 시청자수는 403만여 명을 기록할 정도였다.
시청자 유입도 다양한 계층에서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LoL e스포츠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 최근 3년 이내라고 응답한 비율은 32.7%이었고,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성(46.0%)과 10대(53.5%), 40대(44.0%)의 유입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보급도 대중화되면서 프로스포츠가 설 자리가 잃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내 OTT 이용률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상승했다. 지난해 한국미디어패널조사의 요청으로 시민 1만302명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72.2%(7434명)는 최근 3개월간 OTT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41.0%)보다 31.2% 증가한 수치다.
특히 20대(95.7%)·30대(94.1%) 이외에도 10대(83.8%)·40대(84.9%) 등 전세대에 아울러 85%에 육박하는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50대도 75.2%로 나타난 가운데 10세 미만(67.1%), 60대(48.3%), 70세 이상(10.3%) 순이다.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거의 전 연령대가 OTT를 주된 미디어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넷플릭스, 왓챠 등이 고속 성장하면서 직장인의 퇴근 후 삶을 바꿔버렸다는 평가다. 다른 체육계 관계자는 “과거 프로스포츠의 라이벌이라 하던 OTT나 유튜브 등 온라인 컨텐츠는 이제 프로스포츠를 넘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퇴근 후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OTT를 즐기는 시대”라고 평가했다.
◇ 위기 느끼는 프로스포츠, 본질에 변화 주나
짧고 속도감 있는 디지털 환경과 콘텐츠에 익숙한 MZ 세대에게 프로스포츠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콘텐츠가 익숙한 이들에게 2~3시간이 걸리는 프로스포츠는 흥미 밖이다.
이 때문에 스포츠계에선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4월 플로렌티노 페레즈 레알 마드리드 회장은 유럽슈퍼리그를 개설하면서 “축구는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축구도 우리 생활의 다른 것들처럼 진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살아남기 위해선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 젊은이들이 경기를 보지 않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를 짧게 해야 한다”라며 경기 시간을 90분에서 60분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역시 조금이라도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는 이전부터 7이닝으로 경기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올 시즌 코로나19 여파가 겹치면서 더블 헤더(하루 2경기)는 7이닝으로 제한했다. 이외에도 광고 시간 단축, 고의 사구, 코칭 스태프 마운드 방문 시간 제한 등 조금이라도 경기 시간 단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야구단 관계자 B씨는 “국내에서도 연장 승부치기(10회 무사 1·2루에서 경기 시작) 도입이나 더블헤더 7이닝 단축경기 시행을 하는 등 해외와 비슷한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다”라며 “경기 시간 제한이 없는 게 야구만의 매력이지만, 모두가 경기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경기를 하는 선수단은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겐 경기가 길어질수록 좋을 게 없다.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 차세대 마음 잡아라… 스포츠 업계도 유튜브·OTT에 뛰어든다
해외에선 신규 팬 유입을 위해 앞서 언급한 OTT를 비롯한 뉴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선 뉴미디어 저작권에 개방 정책을 펼쳐 일반 팬들이 중계 영상을 크게 가공하거나 편집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무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해 노출을 극대화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 시티나 토트넘 훗스퍼 등은 구단 다큐멘터리를 아마존 프라임 등의 OTT 서비스에서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움직임을 가져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K리그의 경우 지난해 미디어센터를 설립해 K리그 경기 영상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 생산과 확산을 위해 SNS와 유튜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9년에는 웹드라마 ‘투하츠’를 제작해 프로축구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신규 팬 유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로 인해 K리그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가장 먼저 유튜브 구독자 10만명 고지를 넘기도 했다.
K리그 구단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다. 경남 FC는 올해 웹드라마를 제작해 현재 2회차를 방영했다. 울산 현대, 성남 FC, 인천 유나이티드, 포항 스틸러스 등은 구단 자체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특히 울산의 경우 라이브 커머스를 활용하는 이색적인 전략도 보였다.
프로야구에선 한화 이글스가 MZ세대를 겨낭해 뉴미디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단이다. 기존 마케팅팀을 디지털마케팅팀으로 변경한 이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팀의 레전드 선수인 김태균의 은퇴식이 코로나19 여파로 치러지지 못한 점을 감안해, 김태균이 팬들 앞에서 상품을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는 라이브 커머스를 진행했다. 당시 인터넷 포탈 최상위에 라이브 영상이 노출되면서 약 1만50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를 라이브로 시청했다.
이밖에 한화 이글스는 올 시즌 1년간의 기록을 담아 다큐멘터리를 ‘왓챠’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MZ 세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왓챠’를 통해 기존 팬들의 충성심을 강화하는 동시에 신규 팬 유입을 노리는 모습이다.
체육계 관계자는 “한화를 비롯한 많은 구단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신세대 마음 잡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비단 야구 구단 이외에도 다른 종목의 구단, 연맹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게 아닌, 스포츠 경기 외적인 요소도 소비자들에게 팔아야 하는 시대다.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스포츠는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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